유한백호, 나이반전AU+단어 리퀘.

쏘라아 2015. 6. 11. 06:16

받은 단어 : 아저씨와 아가씨, 조폭, 새벽 한 스푼, 수줍, 안경

벌써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아, 이미 저물어버린지 오래구나.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핸드폰을 꾹 눌러시간을 확인하자 딱딱한 폰트가 새벽 2시를 알리고 있었다. 시간을 자각하자 급격한 피로가 쏟아져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던 문제집을 텁 덮어버렸다. 때를 모를 때에는 아무런 느낌 없었는데. 안경을 벗어 내려두며 백호는 제 눈가를 손으로 꾹꾹 눌렀다. 습관처럼 움츠리고 있던 어깨가 저리기도 했고 배가 고프기도 했다. 오른손에는 샤프, 왼손에는 빨간색 색연필을 들고 있던 손가락도 찌르르하니 쥐가 난 것처럼 고통을 호소했다. 저녁, 아니 야식을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늦었나. 원래 먹는 것에 때를 가리지 않기는 했지만 아무리 도련님인 백호라고 해도 이시간에 누군가를 깨워 배고프다고 찡찡대는 것은 영 마음에 걸렸고 나갔다 오자니 잠귀가 밝은 성재가 벌떡 깨어날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참기에는 많이 허기진데… 핸드폰을 들고 침대에 퍽 눕자 반동으로 침대와 함께 몸이 잔뜩 출렁거렸다. 문자가 와있었다. 배고프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던 머리 속으로 자그마한 메세지 모양이 불쑥 끼어들었다.

[꼬맹아 뭐하냐?]

 이름을 보지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배고프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던 머리 속으로 반듯한 얼굴이 불쑥 끼어들어 생각들을 전부 흩어놓았다. 종종, 아니 꽤 자주 얼굴을 마주하는 검사 아저씨였다. 얼굴은 유한이고 성이… 성이 뭐였더라? 갑자기 머리가 굳어버려 정확히 떠오르지는 않았다. 이름보다는 아재─ 하고 친숙한듯 낯선 호칭으로 부르고는 했으니까. 간보는 것두 아니구 문자를 뭐 이렇게 보낸담. 입술이 대빨 나온 백호는 툴툴거리며 핸드폰을 꾹꾹 눌렀다. 문자는 몇 시간 전쯤에 왔던 것이지만 그도 자신도 각자 업무며 학업으로 바쁠 나이이기 때문에 평소에도 답장의 간격은 기본으로 1시간 이상이고는 했다. 우연히 쉬는시간이 겹칠때는 꽤 빠르게 답장을 주고받곤 했지만, 지금은 아마 야근을 하고있지 않을까? 으음, 조폭의 아들인 자신으로선 검사의 일과를 모르니까. 어렴풋이 추측해볼 뿐이었다.

[공부허요. 지금은 쉬는디 아재는 일하쇼?]

 너무 딱딱한가? 이미 보내버린 메세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백호는 생각에 잠겼다. 아니, 무어, 자신이 계집애도 아니고 신경쓸 이유 있나!? 혼자 발을 쿵쿵 구르며 핸드폰을 베개 아래에 쑥 찔러넣었다. 그리고 애써 신경쓰지 않으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시계 초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조용한 방 안에서 백호는 유한을 떠올렸다. 창 밖으로 새벽을 가르는 자동차 소리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별처럼 백호의 머릿속을 가로질렀다. 그와 자신의 사이는 애매했다. 어디 계집애들이 읽는 소설에서처럼 아저씨와 아가씨간의 연애두 아니구, 그렇다고 해서 아저씨와 소녀간의 연애도 아닌 아저씨와 소년이었다. 남자와 남자라니까!? 형님이나 부하놈들이나 성재도 동성연애라는 주제에 관해서는 이야기 한적도 자신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어 본 적도 없으니 그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거나 이상한 일인지 가름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세간에선 이상한 일로 여겨지는 것이었다. 세상이 괜히 동성애 합법화를 반대하거나 시위를 하고, 그들을 반대하고 욕하는 것이 아니겠지. 하지만 자신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들이 자신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었고 불쾌하게 한 적도 없다. 그렇다면 섣불리 거부할 이유가 있을까? 더욱이, 자신은, 아재라는, 상대가 있는…… 아니!

 순간 퍼뜩 떠오른 생각에 백호는 자신의 뺨을 철썩 때렸다. 얼얼함에 머릿속을 어지러이 돌아다니던 생각이 깜짝놀라 달아났다. 자신은 유한과 사귀는 사이가 아니었다. 물론, 유한이 추근덕대며 어깨를 감싸오거나 허리를 끌어안거나, 이…입맞춤을 한 적도 있었지만 절대 사귄다고 말하거나 고백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자신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짝지로 유한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미쳤다. 미쳤어, 남백호. 아주 돌아부렀어! 백호는 수줍음에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서는 자신이 베고있던 베개로 침대를 수차례 후들겨팼다. 그리고 또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라믄, 아재는 나를 어떻게 생각허지…? 그, 아재가 애인인 것은 아니지만 그, 스킨십을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인디 아재는 내한테 왜 그랬지? 나를 워떻게 생각하구 있는 거냐구… 스르르 움직임이 멈추었다. 더이상은 생각할 수 없었다. 연륜이라는 것이 있어서 단순히 고등학생, 그러니까 한참은 어린 자신에게 장난을 치는 것일수도 있다. 일전에도 자신에게 장난을 치더니만 길길이 날뛰자 너는 반응이 재밌다며 웃고는 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자 침울해졌다.

 그게 다 장난이었다면. 자신을 그저 장난치기 좋은 상대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그거대로 섭섭할 것 같다. 자신은 유한을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자신의 마음 속에서 어떤 사람이라고 판단할지 아직은 정확히 정하지 않았지만 만약에 유한이 자신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깊은 새벽, 누군가가 그리워질 그 아득한 시간에 문자를 보내는 사소한 두근거림들이 그저 단순한 호의였다면. 나는.

 

지이잉─

 

 핸드폰이 요상스레 울었다. 백호는 땅끝까지 추락한 기분을 주체할 수 없어 핸드폰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벽을 한 스푼 타넣은 밤하늘은 백호의 기분만큼이나 어둡게 가라앉아 창을 통해 침대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스탠드 불빛과 섞인 그 어둠 속에서 백호는 가만히 생각했다. 아재. 아재는 나를 어떻게 생각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