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백호, 성장.
* 0살
만약에 잉태되어 어미의 뱃속에 자리잡았을 때부터의 모든 것들을 기억할 수 있다면,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 자리잡히는 순간 어미의 배 배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듣고 느낄 수 있다면, 그가 가장 먼저 듣고 기억하게 될 것은 여성의 찢어지는 절규였을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순간을 축복받지 못함을 알리는 울음소리가 공허한 방을 시끄럽게 채웠고 여성은 자신의 배를 몇 번이고 세게 때렸다. 태어난 이후의 태아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테지만 그것은 제 자식을 향한 비난이고 명백한 죄였다. 하지만 여자는 신경쓰지 않았다. 자신이 가져서는 안될 존재를 가졌고 그것이 양수에 질식해 죽기를 바랐다. 어디선가는 축복받을 잉태를 여자는 그 누구에게도 축복받지 못했고, 태어나는 순간 제 어미의 품에 안겨 울어야할 아이는 그 누구의 환대도 받지 못했다. 백호는 그리도 외로이 세상에 태어났다.
* 5살
아이는 유난히 말이 없었다. 어느날인가 수녀님이 이불을 덮은 아이의 손을 꼬옥 붙들고서는 백호는 하고싶은 말이 없니? 하고 물었더랬다. 아이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는 재촉하지 않았고 그저 습관처럼 아이의 이마에 입맞추었다. 아이의 침대맡, 달빛이 눈부시게도 쏟아져 들어오는 달빛을 감추려 커텐을 칠 때 쯤 아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수녀님, 엄마가 보고싶어요. 정을 그리워하는 고아원의 아이들에게 무수히 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조그마한 아이들이 투정처럼 뱉어내는 그 말이 가벼운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항상 말을 삼키던 아이가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뱉어낸 말에 수녀님은 그만 눈물이 핑 돌고 말았다. 자신도 바랐다. 모든 아이에게, 아이들이 보고싶어 하는 '엄마'라는 존재가 주어지기를. 그것을 신께서 허락하시고 인도하시기를.
* 9살
백호가 낯을 많이 가려요. 그래도 나쁜 아이는 아닌거 아시죠? 형식적인 수녀님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백호는 생전 입어본 적도 없던 빳빳한 양장을 입고선 빳빳하게 서있었다. 자신에게 부모님이 생긴다는 생각은, 단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한 것이었더랬다. 자신의 손을 잡고 데려가 줄 이가 없다는 것은 자신뿐만 아니라 고아원의 그 어느 아이도 알고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어린 나이임에도 체념하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수녀님의 밝은 웃음과 백호야, 부모님이 데리러 오셨어. 그 한마디에 백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올려다 보기가 힘겨울 정도로 커다란 남성, 그러니까 이제부터 자신의 아버지가 될 남자는 수녀님의 설명을 듣는 내내 백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실 아이를 긴장시키는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을 속속히 훑어보는 시선에 어린 아이는 속이 메슥거렸고 더운 날씨에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아득할만큼 긴 시간이 지나고 수녀님의 말이 끝났다. 그녀는 마지막이라는 듯이 백호를 끌어안았고 백호는 조그만 손으로 그녀의 등을 끌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품에서 벗어나, 자신에게로 손을 내민 남성, 그러니까 자신의 아빠의 손을 잡았다. 아빠. 아빠. …아빠.
* 9살(2)
집은 크지 않았다. 아니, 이정도면 큰걸까? 자신이 머물렀던 곳이라곤 커다란 성당과 그 안의 고아원 뿐이니 처음으로 사람… 아니, 고아원의 아이들과 수녀님들도 사람이지만 그러니까 이런, 실제로 가족들이, 생활하는 가정집은 처음 와보기 때문에 섣불리 크다 작다를 판가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성당과 비교했을때 작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성당서부터 집에 도착해 차에 내릴때까지 자신과 아빠를 쫓아오는 남자들은 확실히 커다랬다. 처음에는 자신을 해치려는 것은 아닐까 겁을 덜컥 먹을정도였으나 제 아비가 이따보자며 손을 휘두르자 얌전히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때 백호는 자신의 아버지가 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 17살
백호는 솔직히 짜증이 났다. 분명히. 자신은. 조용히. 아주 조용히 학교 생활을 보내고 싶었다. 물론 자신의 언행이 얼마나 튀는지, 성격은 얼마나 괴팍한지, 기본적인 생각이 일반적인 학생들과 얼마나 다른지 백호 자신은 전혀 알고있지 못했으므로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다사다난했던 자신의 학교생활은 모두 별호파의 조직원들에게 돌리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는 백호로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고등학교만큼은 조용하게 지내고 싶었고 규재에게 입학식은 부모도 잘 안오는 자리이니 제발 애들도 보내지 말라 당부했으며, 아침에 부랴부랴 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그랬건만 강당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오는 검은 정장 무리들은… 백호는 그만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고 말았다. 아냐, 들어오는 것 까지는 괜찮을거야 누구네 사람들인지 모르니까. 그러니까 그대로만 있…
백호의 간절한 희망 한줄기는 도련님!! 남백호 도련님!! 하는 조직원들의 웅성임 속에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설레임 안에 제 성질을 꾹꾹 눌러담아 두었던 백호는 결국 참지 못했고 그렇게 현백고등학교 설립 이래 역사적으로 가장 소란스러운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 17살(2)
에이 씨팔. 이 시간에 교복을 입고 거리에 나와있는 것도 모자라 핸드폰을 들고 쌍욕을 시작한 백호의 모습에 지나가던 몇몇 사람들은 노골적으로 흘긋거렸지만 백호는 그것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속된말로 자신은 수업을 땡까고 있었고 마침 성재에게 들킨 참이었다. 자신보다 형인 성재는 당연히 다른 학년으로, 건물도 분리되어 있고 교실도 멀찍이 떨어져있는데 어떻게 자신이 수업을 튄 것을 알고있는 것인가. 돌아오지 않으면 아버님께 이르겠다는 정중한 문자가 둥둥 떠있는 핸드폰을 들고 다리를 달달 떨던 백호는, 결국, 핸드폰을 꺼버렸다. 그리고 마이 주머니에 쑥 쑤셔넣은 채로 씨익 웃었다. 아니, 수업 한 번 튀었다구 아재가 날 죽이길 혀 뭘 혀. 으응, 맘대로 하라구 해 맘대루. 그리 생각하며 낄낄 흘렸던 웃음은 그 날 저녁 구슬픈 울음이 되어 흩어졌다.
* 18살
백호는 무어라 대답하지 못한채 그자리에서 굳어버렸다. 얼굴도 가물가물 허구, 명찰을 들여다보고 아무리 입속에서 굴려보아도 어색한 이름 석자… 이정도면 거의 모르는 여자에 가깝건만 이런 백호와는 상관없이 여자는 새빨개진 얼굴로 백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20년대 초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수법으로, 자신의 사물함 안에 분홍색 봉투의 편지가 들어있었고 그 안에는 몇시에 어디로 나와달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입학식의 사건과 1년동안 백호의 더러운 성질을 겪어 본 학우들은 아무리 궁금해도 섣불리 달려들어 뭐야!? 하고 물을 수는 없었지만 모두가 어느정도 알아채고 있었을 것이다. 이 편지는 고백의 전조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진 지금, 백호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책상 안에 앙증맞게 자리잡고 있던 그 편지를, 여성미가 물씬 느껴지는 둥근 글씨를, 도전장인 줄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 21살
아직까지 보드라운 살결이 제 손에 감겨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행위를 위해 존재하는, 속된 말로 몸을 파는 여자에게서 그런 흥분이나 이런 후희를 느끼고 싶지 않았건만─알량한 자존심을 이유로─ 박백호 인생 첫 행위는… 끝내줬다. 학창시절 같은반 친구들과 야자시간에 가끔씩 봤던 잡지나 집에서 몰래 보았던 동영상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러니까 이건 직접 해봐야… 아니, 그만 생각하자. 또 얼굴이 화끈거리고 속에서부터 불이 치솟는 느낌이어 백호는 자신을 추스리기로 했다.
* 25살
사실 백호에게 부모로부터 자립한다는 것은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한 조직의 아들인 자신이 부모로부터 자립한다는 것은, 그 부모를 떠나겠다는 것은, 이 세계에 있어서는 등을 지겠다는 의미이니까. 물론 백호에게 그럴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제 자신은 그의 손을 떠날때가 되었고 자신의 포부가, 목표가 있으니 자신만의 무언가가 해보고 싶은 것 뿐이었다. 그의 아버지, 규재는 그렇게 나갈 것이라면 조금 더 번듯한 사업을 할 것이지 해도 꼭 조폭질을 한다며 욕해댔지만 사람이며 건물까지 많은 것들을 쥐어주었다. 꼭 좋아하는 여자애 치마나 들추는 어린애 같다고, 자신의 어머니가 전화로 웃어제끼던 것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직은 새집냄새, 갓 바른 페인트의 냄새, 새로 만들어진 원목의 냄새가 물씬 나 머리가 아프기 그지없는 사무실에 백호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자신과 함께 별호파를 나선 성재는 건물 앞 차에서 대기하고 있었고 자신은 이제 열기만 하면 시작될 사무실 그리고 자신의 조직 앞에서 답잖게 긴장을 머금고 있었다. 떠나는 자신을 도리어 반겨준 아비는 적이라기 보단 빽이었다. 실제로 그가 손을 뻗쳐 도와주지는 않더라도 싸움이 일어날 일은 적을테지.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이 구역, 이 업계에엉덩이를 드밀고 제대로 자리를 잡는 것 뿐이었다. 어려운 것도 아니지. 느슨하게 풀어낸 넥타이를 당겨매며 백호는 키득키득 웃었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태어날 적부터 버려진 자신이, 누군가에게 거두어져 남의 손을 타가며 살아온 자신이, 처음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한 셈이었다. 그렇다면 망설일 것은 없었다. 반드시 해내야만 했다.
* 28살
오셨습니까, 형님! 누군가는 영화 속에서나 들었을, 누군가는 유년시절부터 들었을 우렁찬 기함소리를 들으며 백호는 가볍게 웃었다. 어릴때는 도련님, 도련님 하던 것들이 이제는 형님이라고 허리를 조아리는 모습이 은근스레 뿌듯한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백호보다는 연상이었지만 이 바닥에 나이를 따지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이 없으니까. 그저, 자신이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떠받들어져야했던 유년시절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청각으로부터 마음까지 깊이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지극히 어린애스러운 감상일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좋았다. 자신의 것이 생겼다는 사실이.
자신과 함께 자라온 성재가, 어릴때부터 귀여운 맛 없이 빳빳하기만 했던 성재가 이제는 자신의 오른팔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백호는 가만히 그의 등을 쓸었고 성재는 조금 더 허리를 숙였다. 그와 자신 사이에는 만날때부터 도련님과 조직원이라는 영 갑갑한 상하관계가 존재했지만 이제는 형님과 오른팔이라는 더 돈독하고 믿음직스러운 연결고리가 생겼다. 비단 성재와 자신 단 둘만의 것이 아닌 그 끈끈한 연대가. 여즉 허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들을 슥 훑어본 백호는 들어가자, 짧은 한마디를 남긴채 먼저 사무실로 들어섰다. 그리 남백호파의 아침이 밝았다.
* 30살
아저씨, 여기에 담배꽁초 버리면 안돼요. 불도 아직 붙어있어요! 국어책마냥 한글자씩 또박또박 몰아붙이는 아이의 목소리에 백호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뒤에있던 부하놈들도 어찌할바를 모르고 손을 허공에 띄운채 우왕좌왕하기만 했고 백호는 이미 바닥에 떨어뜨린, 정확하게는 땅바닥에 버린 담배꽁초를 다시 주워야하는 것인가 큰 고민에 빠졌다. 이 상황속에서 유일하게 침착함을 유지하며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는 것은 30살이나 먹은 어른, 그것도 한 조직의 수장에게 잔소리를 뱉어낸 작은 꼬마아이 뿐이었다.
그, 그러냐. 몰랐다잉, 미안혀. 백호는 결국 버벅거리며 허리를 숙였다. 뒤에서 함께 버벅대던 부하놈들은 혀, 형님 저희가 줍겠습니다! 하고 함께 몸을 수그렸지만 잔소리를 해댄 꼬마아이는 안돼요!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해야해요! 하고 말리는 것 아니겠는가… 그 당돌한 모습에 백호는 웃어야할지 화를 내야할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남백호, 30세.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보다 어린 아이에게 잔소리를 들어 본 날이었다.
* 32살
형님, 괜찮으십니까. 편찮으신 곳은… 백호의 손짓에 의해 성재의 목소리가 어색하게 흐려졌다. 자신의 방만큼이나 넓은 1인 병실 안에 싸늘한 기운만이 맴돌았다. 성재도 더이상은 아무말을 할 수 없었고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앉아있는 백호 또한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누구의 잘못은 아니었다. 성재나 부하들에게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조직간의 싸움은 당연한 일이었고 조직의 우두머리로서 린치를 받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조직원을 지켜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평화 속에서 갑작스레 터진 싸움 속에서 채 준비도 마치지 못했던 남백호파는 크게 밀렸고, 그 결과로 보스인 백호는 병원에, 몇몇 조직원들은 상대의 조직에 끌려가있는 상태였다. 갑갑함에 한숨을 몰아쉬자 찔린 배가 욱신거렸다. 자신의 무지함과 아둔함에 화가 나 백호는 그대로 테이블 위의 물병을 집어던졌다. 소란스럽게 물병이 나뒹굴었고 성재는 백호의 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데려와.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올린 백호는 길다랗게 한숨을 내어쉬었다. 이 상황에서 쉽사리 물러나는 것은 더 멍청한 일이었다. 한대를 맞았으면 열대로 돌려주라는 것이 제 아버지의 가르침이었고 자신의 방법이었다. 한 놈을 뺏겼다면 열 놈을 뺏어주리라. 팔에 꽂힌 링겔을 뽑아 던지며 백호는 이불을 걷어내렸다.
* 35살
주말아침은 제 아무리 한 조직의 보스인 백호에게도 나른해지는 시간이었다. 사무실에는 자신이 내킬때나 자신이 필요할때만 나가면 되는 것이고, 주말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백호는 늦은 시간까지 침대 속에서 꾸물적대고 있었다. 창박으로 보이는 날씨는 구름 한 점없이 화창했고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해 오후의 고양이마냥 골골대고 있었다. 이래뵈도 백호인데 말이지.
잠이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길 여러번, 이제 다시 잠이 들 차례에서 눈을 꿈뻑거리고 있자니 초인종이 울렸다. 우유 배달일까, 신문인가, 그도 아니면 교회 사람들인가… 부하 놈들은 성재를 제외하고는 멍청하게 문을 쾅쾅 두들겨대며 형님! 형님! 해대니 그들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렇게 소란스럽게 굴어대면서 조폭인 것을 팍팍 티내는 바람에 옆집 사람도 이사를 가버린지 오래였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있는 동안에도 초인종이 꾸준하게 울려대는 탓에 백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간신히 나른함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누굴까. 한 번 으르렁 대줘야지. 그리 생각했다.
누구… 백호의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안녕하세요! 밝은 목소리가 그를 맞이했다. 머리도 잠옷도 흐트러진채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때문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는 백호와는 상반된, 어색하지만 밝은 표정에 백호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채로 고개를 기울였다. 누구인지 몰라서 그런것도 있지만, 어디서 본 것 같은 얼굴인데… 기억이… 아무런 대답도 없는 백호에게 소년은 쑤욱 무언가를 들이밀었다.
옆집에 이사 왔어요. 인사드리는게 예의일 것 같아서요… 잘부탁드립니다. 그것은 떡이었다. 네모낳고 맛있게 생긴… 떡. 멍하니 소년을 들여다보던 백호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서는 얼른 머리를 정리하고 삐딱한 자세를 바르게 폈다. 아, 이사온다고 했었제, 잘먹을게. 고맙다잉. 탁한 목소리로 간신히 뱉어낸 대답에도 소년은 뿌듯한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잘부탁한다는 짧은 인사와 함께 소년은 옆 집으로 쏙 들어갔고 백호는 조금, 아니 한참이나 자리에 서있었다. …진짜 어디서 본 것 같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