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리베른, 남창AU.

쏘라아 2015. 6. 11. 06:36

​※심슨님의 직장인 리리, 남창 베른하드 썰로 짧게 AU글'//ㅁ//')o

바람이 매섭게도 몰려들었다. 이제는 목덜미가 느슨해진 얇은 목티와, 그 못지않게 얇아 천쪼가리나 다름없는─물론, 모든 옷은 천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코트를 걸친게 전부인 제 옷차림을 원망하며 프리드리히는 어깨를 움츠렸다. 바람이 최대한 부딪히지 않게 몸을 웅크려보아도 이마며 뺨, 귀를 냉랭하게 후려치는 바람에 한숨이 다 터져나왔다. 이 날씨에 담배를 피우겠답시고 나온 자신의 선택이 한심한 것이었나. 이제는 발가락까지 꽁꽁 얼어버릴 것 같은 기분에 괜스레 바닥에 발을 쿵, 쿵 굴렀다. 차갑게 굳어버린 몸이 그만하라며 고통을 호소할 뿐이었다.

 ​코너를 돌아 골목길로 들어섰다. 사무실에서 내려다 볼 때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바람이 불지않아 담뱃불이 쉽게 붙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양 겨드랑이에 푹 찔러넣었던 손을 풀어 주머니에 찔러넣었을 때, 라이터를 가지고 내려왔던가? 불안함이 밀려드는 가운데 고개를 들었을 때, 그 으슥한 골목길에는 생각치도 못했던 인물이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애초에 이 곳에 사람이 있을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늦은 시간이고 말그대로 으슥하고 어둡고 꼭 도둑고양이들이 쓰레기통을 후벼파고 있을 것 같은 길인지라. 그런 곳에 발을 디딘 프리드리히도 프리드리히지만 가만히 벽에 기대어 서서 담배를 피는 남자도 참 해괴망측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자신이 아는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프리드리히의 음성에 남자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였다. 골목길 입구에서부터 껌뻑거리는 불빛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남자의 얼굴이나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드문드문 보이는 자빛 머리카락이나 내리깐 눈꼬리 아래로 보인 호박색 눈동자 그리고 그 특유의 침울한 분위기만으로도 이 사람이 그 사람이구나 하는 것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쏙 들어간 볼이 조금 더 홀쭉해졌다가 가까운 입술에서 연기를 뱉어내는 것을 보며 프리드리히도 담배를 꺼내어 물었다.

 남자의 이름은, 뭐더라, 베른…하…드? 그에게 직접 전해들은 이름도 아니거니와 스치듯이 흘려들었던 이름이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다만 동료들이 저 남자 너랑 진짜 비슷하게 생겼어. 라고 말했었고 자신은 그 때 제법 불쾌했었다. 왜냐면 남자 아, 그러니까 베른하드는 남창이었으니까.

 이름도 모르는 남자는 간판한 요란법석한 가게의 유리창 너머에 허망하게 앉아있었고 자신과 동료들은 그 근처를 지나는 중이었다. 요즘은 남자도 몸을 팔아? 누군가 수근거렸고 프리드리히랑 닮은 것 같은데? 또 누군가가 이어서 수근거렸다. 한 번 떠오른 대화주제에 동료들은 시끄럽게 떠들어댔고 끝끝내 자신은 처음보는 가게의 처음보는 남창과 쌍둥이가 아니냐는 소리까지 들어야했다. 심지어 그 가게 안으로 질질 끌고 들어가기까지! 그 남자의 가격을 묻기까지! 마담으로 보이는 여자가 역겨울 정도로 늘어지는 목소리로 베른하드요? 얘는… 까지 말했을때 프리드리히는 가게를 뛰쳐나왔다. 소름이 끼쳤고 기분이 더러웠다. 비단 동료들의 장난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마담의 뒤로 자신을 돌아보던 베른하드의 시선이 무서울만큼 무덤덤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그래 아무렇지 않겠지! 몸을 파는게 익숙 하겠지, 그게 일이니까! 직업이니까! 그런데 니가 나랑 잘거야? 으응, 그래? 라고 태평하게 말하는 듯한 눈빛이 소름이 끼쳤다. 사실 더 소름이 끼치는건 지금 골목길에서 우연찮게 만나버렸다는 사실이긴 하지만.

 과거를 떠올리는 사이 담배는 타들어갔고 어색한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베른하드는 고요했고 자신은 민망했다. 베른하드도 실은 속으로 민망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니 갑작스레 말을 붙이고 싶어졌다.

"그, 추우…신가봐요. 손이 빨개지셨네…"

"……?"

 미친, 망했어.

 무식할정도로 대뜸 꺼낸 자신의 말과. 무례할정도로 대뜸 베른하드의 손끝을 잡은 자신의 행동에 프리드리히는 벽에 머리라도 쳐박고 싶었다. 차라리 말을 걸지말걸하는 후회가 추위만큼이나 강렬하게 자신을 후들겨팼다. 무슨 작업거는 것도 아니고. 아, 신이시여. 애써 입꼬리는 미소를 유지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몇 번이나 자신의 멍청함에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증거로 베른하드와 맞닿은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니, 그─"

"그쪽도 그런 것 같은데. 손이 떨리네."

 가볍게 프리드리히의 어조를 따라하는 베른하드의 표정에는 웃음기 하나 없었다. 민망해질뻔 했지만 처음듣는 남자의 음성에 민망함보다는 놀라움이 먼저 프리드리히를 흔들어 놓았다. 목소리, 좋네… 얼빠진 표정을 하고있는 프리드리히의 얼굴 위로 베른하드가 뿜어낸 담배연기가 흩어졌다. 입김이었는지 담배연기였는지는 아직도 정확하지 않지만. 희뿌연 것이 제 시야로 아른거렸고 그 사이로 눅눅히 가라앉은 눈동자가 보였다. 마침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골목길 사이로 새어 들어왔고, 영화처럼 베른하드의 눈빛으로 쏟아져들어 스치고 지나갔다.

 막무가내로 표현하자면 꼭 이끼가 낀 것처럼 탁해져버린 빛이었다. 어쩌면 연기인지 입김인지가 제 시야를 흔들어놨기 때문일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건 남자는 꽤나 울적해보였다. 애써 그렇지 않은 척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자신의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지만. 그냥 그래보였다. 핏기가 쏙 빠진 창백한 피부나 두드러진 광대뼈 위로 불긋하게 물든 추위의 흔적이나 무엇보다도 그 칙칙한 녹색 시선이 꼭 처음 만났던 날처럼 너무나도 무덤덤하고 동시에 우울해서, 프리드리히는,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놀러와."

 하지만 남자는 웃었다. 그 가느다란 입술이 아무렇지 않게 미소를 그렸고 그대로 뒤돌아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담배가 제 몸을 반이상 태우고 손 끝으로 뜨겁게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프리드리히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미소와 자신이 몸을 파는 가게로 놀러오라는 그 자극적인 대사가 프리드리히의 발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추위보다도 지독하게 자신을 묶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