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쉬, 과거..인데...
입 안이 텁텁해질만큼 연기를 가득 집어삼켰으나 뱉는 법을 잊어 한참동안이나 입 안에 머금고 있었다. 입을 벌려야 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단순히 숨을 여유롭게 쉴 구멍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지 코가 아리도록 치고 올라온 매캐함 때문은 아니었다. 답잖게 연기보다 더 짙은 정적을 삼키고 있던 조쉬는 결국 피식 웃어버리는 것으로 무겁게 가라앉은 기분을 떨쳐냈다.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화가 난 것은 더더욱 아니고, 그렇다고 슬픈 감정도 아니고, 짜증이 난 것도 아니며… 뭘까, 이건. 이 나이 먹고 아직도 생소한 감정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까슬한 입술을 쓸어내자 기어코 한숨이 새어나왔다. 확실한 단어로 매듭지을 수는 없지만 지금의 이 감정과 가장 닮아있는 감정은 아무래도, 외로움이었다.
언제부터 자신이 길거리에 혼자였으며, 언제부터 후보생이었고, 언제부터 스파이가 됐으며 또 언제부터 멘토가 되었는지. 정확한 시기같은 것들은 떠올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스파이로서 자신의 삶은 하루하루를 위기 혹은 그 직전의 위태로움 속에서 지내야만 했고, 그래서 일에 관련된 것을 제외하고는 기억력을 할애하지 않는 편이 나았으니까. 그렇다고해서 불타오를듯 자신의 손끝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그 처음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새하얀 빛도 아니고, 시커먼 짐승이 달려들어 제 그림자를 집어 삼켰던 그 때를 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당신이랑 처음 만난 날 말이야.
기억하고 싶지는 않으나 어거지로 기억하고 끄집어내 보자면, 딱 어린애라는 말이 어울렸던 과거의 자신은 치기어린 애송이였다. 또 세상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는 줄 알았던 애송이. 하지만 그 근거없는 자신감과 꼬리를 물고 높이 치솟은 프라이드를 뭉개며 치고 들어오는 남자를 막거나 피하거나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몰랐던 애송이.
'네가 할 줄 아는게 뭐가 있어, 등신새끼야.'
면전에 퍼부어지던 폭언에 얼빠진 표정으로 올려다보던 과거의 표정이 떠올라 조쉬는 괜스레 제 턱을 문질렀다. 그 때 뭐라고 반박이라도 할 걸. 이제와 하기엔 늦은 후회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후회는 항상 뒤늦게 하는 법이었으므로, 속절없이 그것을 가슴 안으로 삼키며 담뱃불을 발로 지졌다. 이내 그는 기왕 시작한 후회니 몇 가지 더해볼까, 싶은 마음이 들어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나, 이제 늙어가는 양반 조금이라도 더 챙겨줄걸. 둘, 언제 다시 들을지도 모르는데 좋은 말 좀 해둘걸. 셋, 고맙다는 말을 많이할걸. 넷… 생각이 깊어 질수록 목구멍이 쓰라린탓에 그만두고야 말았다. 무엇이든 한 눈을 팔 것이 필요했지만 어느것도 오래 품고 있지를 못했다.
한 때 제 스승이었던 남자가,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결론을 맞이할 것이란건 알고있었다. 그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업에 걸맞는 끝이었고 그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젊을 때고 지금이고 능청맞게 자신을 구슬리는 목소리를 언젠간 잃을 것이고, 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만큼이나 깊은 잠에 빠져버린 그의 빈자리가 이리도 클 줄은 몰랐던 것이 문제였다. 이렇게 막연한 후회로 마음이 아플 줄은 몰랐던 것도, 문제였다. 무수한 씁쓸함이 조쉬를 때렸고 당신 때문이라 탓할 상대조차 없는 것도, 문제가 될 것이었다.
기약없는 기다림은 싫었다. 확신이 없는 기대감도 싫었다. 그것들은 자신을 언제나 외로움으로 내몰았고, 외로워하는 것은 이제 지긋지긋 했으니까. 하지만 결국엔, 당신이 날 이렇게 만드네.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외롭던 자신을 구제했던 남자가 결국엔 다시 외로움을 심고 가버린 셈이었다. 끝까지 도움이 안된다니까… 그의 웅얼거림을 끝으로 불씨가 사그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