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쟝, 부스러기.

쏘라아 2017. 2. 17. 19:03


 쟝은, 공감능력이, 조금… 부족한 것 같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계집애가 조심스레 지껄인 말을 처음 들었을때 그가 생각한 것은 단 한가지였다. 무슨 개소리야. 머리를 웅웅거리는 생각을 입밖으로 꺼내었을때 그녀는 눈물을 글썽였고 자신은… 글쎄, 기억나지 않았다.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다. 중요한 기억도 아니었다. 그저 종잇장보다 얇은 기억력을 스쳐지나가는 짧고 낡아빠진 기억의 한 조각일 뿐이었다. 딱히 신경쓰일만큼 날카로운 조각도 아닌 것이 자꾸만 신경을 건들며 바깥으로 나오는 이유는… 아, 그것도 글쎄. 길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보다 훨씬 나이를 먹은 지금에서야 자신도 어느정도 자각하고 있었다. 타인에게 공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어렵기 이전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돌고, 자신은 자신에 대해서만 생각하는데 왜 다른사람의 감정이나 다른사람이 품고 있는 생각을 고려해야하고, 공감해야하고, 보듬어줘야 하는 것일까. 어릴적 제대로 읽지도 않았던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지루한 사상이었다. 그만큼 타인이라는 것은 쟝에게 비중있는 요소가 아니었다.

 주먹을 쥐자 짓물러 터진 상처가 도드라졌다. 핏물이 스며드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옷깃에 대충 문질러냈다. 피부가 한 겹 벗겨져 나간 상처부위가 아프다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인상만 찌푸리고 말았다. 한참의 기싸움과 주먹질로 지쳐버린 몸과 머리는 아무것도 신경쓰고 싶지 않아했기 때문이었다. 피곤이 눈가로 밀려들었지만 머리 속에서 부산스레 움직이는 잡생각들이 피곤을 자꾸만 밀쳐냈고, 결과적으로 그 때문에 더더욱 피로했다. 자고싶은데.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자 흙먼지가 느껴졌다. 씨발. 그 어느것에도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아아, 그래. 신경쓰고 싶지 않았다.

 최근, 자꾸만 신경쓰이는 일이 있었다. 신경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꾸만 신경쓰이는 일이 있었다. 자꾸만 신경을 건드는 그 어린시절 기억처럼, 자꾸만 자신의 눈에 아른거리고 머리통을 툭툭 건드리는 일이 있었다. 신경쓰인다는 생각 자체도 하고싶지 않을만큼 귀찮은데, 자꾸만, 자꾸만. 무의식적으로 손길이 닿고 눈길이 닿고 뻗어내 잡게 만드는. 하려는 말이 머리에서 나뒹굴고 그것을 뱉어내려는 자신이 이해가 가지 않아 운을 떼고 한참을 숨만 삼켜내는 그… …

 생각이 이어지자 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 같아 쟝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거칠게 밀쳐진 의자가 나뒹굴었지만 평소처럼 신경쓰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신경쓰이지 않으면 얼마나 좋아. 퉁퉁 부은 눈을 문질러대며 가게를 나섰다. 찬 바람에 시린 목을 두어번 문질렀다. 그리 네 생각으로 빙빙 돌 새벽이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