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과열된 분위기는 새벽 공기에 식은지 오래였으며 유일할 것 같았던 제 보스는 목숨을 잃었고 손에는 피 한방울 묻지 않았으나 제 유일한 핏줄은 끊겨버렸으니. 유언으로 새 보스가 되었던 그녀, 본인이 주장하는 바를 따라 그. 꽃님의 떨리는 뒷모습을 그려보던 명빈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건너편에는 시체와 피가 즐비하여 머리가 아득했고 그 사이에는 분명히 명신이 누워있을 것이었다. 누워있었다. 눈을 감고 있었다. 자신이 똑똑히 보았다. 명신의 시체였다. 그 날 이후로, 다시는, 네가 그렇게 누워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는, 네가 다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시는, 네가 멀리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그러기 위해서 모든 시간들을 포기했는데.
울음이 날 것 같아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언젠가 꽃님과 함께 건너보았던 야경이 오늘은 바쁘게 일렁이고 반짝거리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조명 하나, 건물 하나, 가로등 하나까지 전부… 홍콩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저희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이 커다란 땅바닥 어딘가에는 네가 있어야했다. 명신아, 네가 살아있어야했다. 우리가, 살아남아야했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일분 일초들을 포기했는데.
자꾸만 속을 때리는 감정을 참지 못해 허리를 숙였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을 적에는 운전하던 치가 괜찮으십니까, 단정하게 물었고 괜찮아, 가다듬지도 못한 말투로 대꾸하는 것이 다였다. 모든 것이 끝났다. 끝은 새로운 시작이고 새로운 보스가 생긴 이상 새로이 할 일도 새로이 다져야할 기반도 아주 많았지만, 모든 것이 끝났다. 세상에서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이 세상을 떠났으니 모든 것이, 끝나버린 셈이었다.
명신의 시체를 마주할 적에는 그 소름끼치는 환각이 보이질 않았다. 누가 저에게 닿아오면 살이 온통 문드러져 살점이 뚝뚝 떨어지고 피가 낭자하던 그 환각,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던 환각이 오늘만큼은 얌전하여 너를 오롯이 바라볼 수 있었다. 너 때문에 시작되고 너를 밀어내야했던 유일한 이유가 너를 보고 멎어드는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울음이 날만큼 아이러니한 상황에 명빈은 또 참아내야했다. 전보스의 오른팔, 끈질긴 시간들을 버텨 온 사람,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울음 또한 삼켜내야했다. 앞으로도 견뎌내야할 모든 것들을 위해, 앞으로도 자신을 괴롭힐 모든 것들을 버티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버텨내야했다. 하지만 홀로 차에 올라타서 부터는 참을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네가 눈 앞에 자꾸만 일렁거렸다.
명신아. 죄스러운 목소리가 제 처지를 아는지 기어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불러보는데 속에서 맴돌기만 하고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그것을 다행이 여기는 것도 우스워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눈물을 떨구어냈다. 명신아. 너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네가 들어주지 않아도 좋았다. 어차피 이제는 듣지 못할 것이었으니 살아서 죽을 때까지, 죽어서까지 나를 원망해도 좋았다. 하지만 명신아. 나는 너를 지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나는, 동료라는 것과 애정이라는 것과 유대감이라는 것과 신뢰라는 것과 형제라는 것, 전부를 끊어내고 진실과 함께해 온 시간을 전부 삼켰다. 너를, 나를,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이제 다 끝나버렸으니 나는 더이상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할까…
목숨이라는 작은 불꽃, 그 하나에 불쏘시개를 들이밀기 위해 삼켜온 것들을 다 토하듯이 명빈은 울었다. 가느다란 실가닥에 연결되었던 것들이 전부 무너져내리고 견고한 듯 불안하게 서있던 제 억장도 무너져 한 번 터져버린 댐은 막을 수가 없었다. 유독 시린 두 손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하지만 너는 살아돌아오지 않을 터였다.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헨젤, 감정의 무게. (0) | 2016.03.06 |
---|---|
조쉬, 임신했대요~ (0) | 2015.12.15 |
조쉬, 야설.. (0) | 2015.08.13 |
조쉬로이, 뱀파AU 조각글. (0) | 2015.06.11 |
남백호, 성장. (0) | 2015.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