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너머로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케이크를 보면서 조쉬는 생각했다. 나는, 당근이 싫어.
정확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당근을 꺼려했다. 기억이 맞다면, 제 스승되는 이가 편식하는 애새끼는 말도 안들어. 라고, 말도 안되는 이유로 우겨대며 자신의 입에 당근을 쑤셔 넣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당근은 물론, 그제까지 먹었던 것들을 전부 게워냈고, 이후에도 자의로 몇 번 도전하긴 했으나 도저히 씹어 삼킬 수 없는 음식이 되었다. 자신이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그것 뿐이지만, 그때에도 묘하게 거부감이 있었던 것을 보니 이전부터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기억나지 않으니까. 누군가가 당근이 왜 싫어. 물으면 그냥. 이라고 밖에 답할 수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 나이에 편식을 한다고 손가락질 했지만, 조쉬에게는 나름 큰 문제였다. 왜냐면, 지금, 눈 앞에 있는 당근 케이크가 먹고 싶거든!
케이크를 싫어하는 어린아이가 있을까. 아, 있겠지 물론. 저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사실도 망각한채 조쉬는 케이크와 저 사이를 가로막은 유리를 손가락으로 뽀득, 문질렀다. 뽀오얀 생크림 가장 위에 얹어져 있는 당근 모형은, 실제 당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저 달다구리한 설탕으로 만든 장식일 뿐이겠지. 하지만 당근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거부감이 들었다. 저 케이크의 정체성을 알리고 있는 모양새니까. 내 안에는 당근이 들었어! 그것도 많이! 누군가가 제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아 그는 괜스레 귀마개를 고쳐썼다. 그럼 그냥 발길을 돌리면 될 것을 왜이리 망설이고 있느냐면, 너무나 맛있어 보였으니까. 딸기 케이크도, 민트 케이크도, 티라미수도. 평소에 즐겨먹는 케이크들이 양 옆을 가지런하게 채우고 있었지만 그는 이상하게 당근 케이크가 끌렸다. 당근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가까이 해보지도 않았던 케이크인데. 다른 디저트는 모두 사랑했음에도 유일하게 멀리했던 종류인데! 그래서 더더욱 끌리는 것일까.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그냥 두고 돌아서자니 아쉬워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고, 다른 케이크를 사먹는다고 해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먹자니 당근 케이크에 대한 환상이 조각조각 깨질 것 같아서. 케이크를 눈 앞에 둔채로 그는 제법 오랜 시간을 고민해야만 했다.
쭈그려 앉은 채로, 이쯤되면 가게 안에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던 점원이 눈치를 살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내는 결심한듯 번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게 안으로. 짤랑, 경쾌한 종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환히 웃으며 말했다. 저거, 한 조각 줄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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