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군가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불현듯 심장이 덜컹거리는 기분이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입에 많이 담지않았다. 다른 이들에게는 호기심에 몇번이고 던졌던 질문이지만 막상, 자기 자신에게는, 너희 가족은? 묻지 못했다. 묻지 않았다. 물처럼 삼켜버린 기억이었다. 누군가가 마지막에, 그리 소리질렀기 때문이다. 우리는, 잊어도 좋으니, 너는 문을 열고 떠나라고. 그래, 이제는 그 목소리마저도 잊어가는 모양이었다.
계단을 걸을적에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꿈에서 본 것 같은, 어디서 본 것 같음 그 소름끼치는 감각. 현실과 이상 사이를 오가는 듯한 가벼운 어지러움. 안개속을 더듬거리는 것처럼 나아가면 답이 있을 것 같지만 자신은 고작 안개 속에 가만히 서있는 것이 전부인, 그. 시체로부터 흘러나온 핏덩이에 모든 생각은 멈추었다. 숨을 집어삼켰다. 손가락 틈새에서 아른거리던 기시감이 현실이 되어 머리를 집어삼켰다. 자신은, 지레 겁먹은 누군가의 등을 토닥이거나 주변을 훑어보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그래, 현실이 아니었다. 아니, 현실이었다. 아니, 현재 자신이 마주한 현실이 아니라, 자신이 공기처럼 삼켜버린 기억이었다. 그래, 제 어미와 어비는 하나의 핏덩이가 되어 교회 바닥에 누워있었다. 늘어진 시체가 뭉글거리며 그때의 형상을 그렸다. 그래, 제 어미와 어비는 병에 잠식되어 그 차가운 바닥에서 기며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로미오, 사랑스러운 로미오. 마지막 손길이 지나치게 차가웠던 것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제야 왜곡된 진실이 하나씩 제자리로 돌아와 로미오에게 속삭였다. 너는 그들을 두고온거야. 바람처럼 간질거리는 것이 심장을 깨물고 죄책감을 남겼다.
자신은 도망쳤다. 안전한 곳이라고 믿었던 곳은 녹슬어버렸고 자신이 아는 얼굴들은 하나같이 울거나 일그러져 세간에서 말하는 좀비라는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곳에서 안전한 것은 오로지 저 하나였다. 가. 도망가. 떠나. 안전한 곳이라고 믿었던 품은 무너져버렸고 자신이 아는 얼굴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떠밀고 있었다. 멈추어버린 발걸음을 어거지로 떠미는 그 손길과 그 목소리를 자신은 다 읽은 책처럼 조용히 덮어두어야만 했다.
우리는 이대로 버려두어도 좋으니, 잊어도 좋으니까, 빨리 가. 떠나. 여기를 떠나. 살아남아야해, 로미오.
성가대의 찬송처럼 여러개의 목소리가 더듬더듬 외친 단어들을 떠올려냈다. 금방이라도 아스러질 방공호 속에서 로미오는 혼자 살아남았다. 자신을 위해 희생된 목소리들을 업은채 문을 열었다. 그대로 뒷걸음쳐 교회에서 빠져나왔다. 그 커다란 문을, 지옥의 문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세게 닫은채 한참이나 서있었다. 안에서 괴로운 신음성들이 터져나왔다가 짐승과도 같이 끓는 소리로 변할때 낼 때쯤에야 발을 움직였다. 교회에서 멀어질 수록 자신은 문을 닫았다. 책장을 덮었다. 기억을 닫았다. 그 위로 왜곡을 덮었다. 그리하여, 자신은 교회에서 아직도 그들이 기다릴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 그래. 그것이 자신이 유일하게 믿고있는 거짓된 현실이었다.
여기서 나갈 생각이야? 누군가 물었던 질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자신은 쉽사리 답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나가면 발걸음이 다시 향할 곳이 있을까요? 내가 그리 믿었던 대로, 교회에서 사람들이 나를 기다릴까요? 기다릴까요? 온전한, 인간으로서, 나를 기다릴까요? 아니면, 미움에 젖어, 나를 잡아먹기 위해 기다릴까요.
괴로운 현실이 천천히 눈덩이로 올라와 앉았다. 지나치게 피곤했다. 눈을 감았다. 현실로 돌아가야 할때란다, 로미오. 누군가가 속삭이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도 눈을 뜨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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