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양 손엔 각기 다른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가 채워져 있다. 뼈에 살가죽을 얇게 발라놓은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은 얄팍한 손목에 수갑처럼 채워진 두 시계의 시간차는 정확하게 1시간 23분 5초라고 했다. 하나는 흑백화면에 딱딱한 모양으로 시간이 뜨는 아날로그형 시계이고, 하나는 초침이 없고 시침과 분침만 있는 시계건만 어떻게 초 차이를 아느냐. 꽤나 날선목소리로 그를 몰아세웠을 때 그는 단지 알아. 나는 알아. 침범벅이 된 입술을 비틀었을 뿐이었다.
경쾌한 멜로디가 핸드폰의 벨소리 혹은 문자수신음을 방불케했다. 하지만 멜로디의 근원지는 나의 핸드폰이 아닌 오빠의 손목시계였다. 파란색이 본디 색이지만 오빠가 자신의 미적감각을 한껏 발휘해 보라색, 핑크색, 검은색, 노란색 등등 여러색의 싸인펜으로 선이나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손목시계는 주먹만한 뽀로로가 달린 뚜껑이 화면을 덮고있는 형식이다. 그 뚜껑을 열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듯 하지만 정확한 이름은 붙여지지 않은 멜로디가 약 30초간 흘러나온다. 어린아이들이 좋아할법한 단조롭고 높은음의 멜로디를 오빠는 굉장히 좋아한다. 어쩌면 나나 엄마보다도 그 단조로운 멜로디를 좋아할지도 모른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멜로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오빠가 침을 비죽비죽 흘려대며 시계를 보고있었다. 그리고는 혼잣말처럼 12시. 12시. 중얼거리며 나에게 집요한 시선을 보내왔다. 사실 두 눈동자는 나를 빗겨나가 나의 뒤에 위치한 가죽쇼파의 등받이에 향해있었지만 오빠는 어릴때부터 사시였고 그의 동생인 나는 오빠의 시선이 진짜로 어디를 향하는지는 척봐도 척이기에 오빠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채기 쉬웠다. 그나저나, 1시 23분 5초나 되었구나, 벌써. 참고로 형형색색의 파란색 시계는 1시간 23분 5초가 느린시계이자, 오빠의 오른쪽 손목에 채워진 시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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