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에게. 어떤 글자를 적어낼까 쉽게 정할수가 없어 종이 위에 펜을 덧그리기를 여러번, 드디어 서두를 적어냈다. 이것은 두서없이 적어낸 편지이자 나의 미래에게 보내는 흔적이며 너의 과오에게 전하는 간절함이었다. P에게… 홍수처럼 탁 터지며 흘러나온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졌다.
행복하니? 잘지내니? 무엇을 하고있니? 여러가지 안부인사를 떠올렸지만 역시나 쉽게 적어낼 수 없었다. 이깟 편지하나를 적기 위해 이리도 공을 들여야한단 말인가. 자조적인 웃음을 건채로 덜덜 떨리는 손을 다잡았다. 그리고 기어코 적어냈다. 그곳은 어떻니? 네가 들었을 때 가장 잔인할 질문을 떠올렸다. 생각을 그대로 적어내기 시작했다. 그곳은 어떻니? 내가 없는 자리를 누군가가 채워주고 있니? 내가 없을 시간들은 누군가가 채워주길 바라니? 너는 어떻니? 수많은 질문과 무자비한 잔인함과 무수한 눈물이 종이를 때렸다. 답장은 받지 못하겠지만 만약, 수신인이, 후회하니? 자신에게 그리 되묻거든 답해주고 싶었다. 아니, 후회할 수가 없어.
손끝이 새빨갛게 얼어있었다. 아니, 이 색을 하얀색이라고 하던가? 하얗다고 하기엔 너무 파랗잖아. 아니, 아니야. 눈알이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었다. 술에 취한 것이라기 보다는 약에 취한 것이었다. 킥킥대며 자꾸만 웃음이 터져나오는 것을 역겨움으로 숨겨내며 편지의 막바지를 적어냈다. 이 나쁜년아… 너는 행복하렴… 진심이지도 않은 단어를 굳이 적어내기 충분한 정신으로 종이를 꽉 채우고, 대강 반으로 접었다. 한 번 더 접었다. 습관처럼 찢어버리려던 손길을 간신히 거두고 편지를 바닥에 던져두었다. 자신의 웨딩드레스 끝자락 아래, 흔들리는 발 아래 꼭 시체처럼 몸져 누워있는 편지가 보였다.
여자의 고개가 늘어지더니만 얼굴을 샅샅이 덮고있던 면사포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고, 손에 들었던 부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신부는 목매달아 죽기로 했으며 영화처럼 구해줄 신랑은 없었다. 이미 자신의 손에서 핏자욱으로 멀어진지 오래였다.
아, 메리크리스마스. 편지에 적어내지 못했던 단어를 떠올리며 여자는 천천히 숨을 멈추어갔다. 목이 졸리기 시작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이윽고 숨소리가 멎어들어가기 시작했으며 드디어, 숨을 쉬지 않아도 괜찮게 되었다. 이것은 죽음이요, 자살이며, 제 부모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작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