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1. 06:30


선수들의 숨소리와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눅눅하게 젖어든 경기장은 흥분이 최고조에 달해있었다. 온 몸을 짓누르는 피로를 악 하나로 떨쳐내며 습기에 찌든 잔디에 발을 힘주어 박았다. 축축하게 젖은 손을 보호구에 대충 내어닦은 히루마는 킥 티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괜찮냐고 물어볼 것도 없이, 키커의 상태가 어떤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히루마는 앞을 주시했다.


 상대팀도 자신의 팀도 이미 몸 상태는 엉망이었다. 그 어느때보다 치열했고 그 어느 경기보다도 격렬했다. 비명과도 같은 기합소리에 자신들의 두려움을 숨겨둔 채 선수들은 육감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어느 누구의 것인지 모를 커다란 소음과 함께, 승부에 종지부를 찍을 키커가 발을 휘둘렀다. 실패하지 않는다. 실패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저라도 마지막 순간에 치미는 부담을 아군의 믿음으로 깔끔하게 밀어버렸다.


 아찔할 정도로 거센 힘이 느껴지는 발길질이 공을 걷어찼다. 그리고 그 때, 그 순간. 히루마는 상대팀의 악받친 목소리와 관중석의 환호 속에 섞여 아무도 듣지 못한, 무언가가 와지끈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자신의 전우가 영원히 전장을 떠나는 소리였다는 것을 경기를 끝마침을 알리는 휘슬이 불어지고 나서야 깨달았다. 뒤늦게 깨달았을 때 무사시는 이미 바닥에 고꾸라져있었다.

 

* * * *

 

 생각해보면 꿈과도 같았다. 지난날 자신과 데빌배츠가 이루어 온 승리는 마치 자신이 아주 긴 시간 정성을 들여, 아주 사소한 부분이라도 빈틈이 없도록 꿰맞추고 다듬어 만든 완벽한 꿈인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찬란한 날들에 내질렀던 함성과 승리의 쾌감은 오금이 저릿할 정도로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그 경기때는 어땠더라, 이 경기때는 어땠더라 하는 것들이 모두 생각이 날 정도로 매 승부는 데빌배츠에게 큰 전쟁이었다. 하지만 히루마는 그것들이 모두 꿈이기를 바랬다. 자신, 쿠리타, 그리고 무사시가 함께하는 '세 사람의 미식축구'는 이제 신경쓸 바가 아니었다. 과거에는 꿈이 아니었으면 했던 사실이 모두 자신의 한 낱 꿈이기를 바랬다. 아주 혹시나 그 모든것이 꿈이라면, 데빌배츠 최고의 키커이자 최고의 전우인 무사시의 무너진 다리는 사실 무사한 것이 되니까, 그러면……. 저도 모르게 초조하게 생각을 이어나가던 히루마는 생각의 허리를 뚝 끊고말았다.자신이 부정하는 사이에도 그 날 들었던 소리는 잊혀지지 않고 남아 히루마를 괴롭히고 있었다.

 

 누군가가 괜찮냐고 물으면 대답대신 저 특유의 킬킬거리는 웃음을 흩어놓으며 기관총을 쏴 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키커, 아니 미식축구 선수로서의 가능성이 산산조각난 장본인이 괜찮은 것이냐고 물으면 자신은 아무것도 해줄수가 없었다. 페이크도 허세도 그 어떤 거짓도 무사시에게는 통하지 않으리란 것은 알고있었다. 그 때, 히루마는 처음으로 진실을 말했다. 네 다리는 이제 쓸 수 없어. 재기불능이다.

 재기불능. 단어 뜻 그대로 무사시는 다시 일어날 능력이 없었다. 공을 걷어찬 오른 발의 정강이 뼈는 으스러질대로 으스러져 '걷는다'는 기능 자체를 상실해버렸고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이미 그 속내 자체가 상실감으로 썩어 문드러진 탓이었다.

 

 미식축구는 우리의 전부야. 히루마는 불현듯 어떤 등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때는 너희가 소년만화의 주인공이냐며 웃어넘겼던 것 같다. 사실은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절실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히루마는 정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부실에 쳐박혀있는 그 낡아빠진 킥 티는 또 한 번 제 주인을 아주 긴 시간동안 기다려야겠구나. 그것만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