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삐뚤어져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잔을 차고 넘칠정도로 보드카를 따라내는 멍한 정신머리로 해리는 생각했다. 말그대로, 자신은 삐뚤어져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을정도로 까마득한 어린시절부터 강요당해온 정의라는 것은 모든 마법사들의─아니, 혹은 일부의─ 적을 죽이기 전, 그리고 죽이고 나서부터 해리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숨통을 조이고 들었다. 철없는 어린애라면 쳐보고 싶었던 장난들, 해보고 싶었던 부질없는 행동들을 모두 규제하는 것은 그 정의라는 것이었다. 자신은 왜 정의로워야만 하는가. 어느날인가 푹신한 쇼파에 파묻혀 잠이들기 전,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날로부터 시작됐다. 자신의 말마따나 자신이 삐뚤어지기 시작한 것은.
남자에게 정복감이라는 것은 제아무리 순진한 척 얌전을 떠는 남자에게라도 은연중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리에게도 없을리 만무했다. 다만, 주변의 시선이라는 것이 있고 '영웅'이라는 자신의 타이틀이 있어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것 뿐이리라. 고쳐 생각해보면 자신의 정복감은 조금 비뚤어진 방향이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그 사람이 온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둘도 없을만큼 즐거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상대가 마치 개나 고양이처럼, 그리고 자신이 주인이 된 것처럼 긴다면 그것만큼 손가락이 움츠러들정도로 짜릿한 일이 없었다.
여기서 긴다는 것은 단어의 의미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기어다니는, 어찌보면 (실로 고약한)성적인 뜻으로도 그러했지만 해리는 누군가가 육체적인 것을 넘어 정신적으로 자신에게 엎드려 기는 것이 더욱 즐거웠다. 자신은 그를 지배하고, 그는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눈치를 보고 몸을 사린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그에게는 왕의 명령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그 지배, 피지배적인 관계는 언제나 해리를 즐겁게했다. 세간에서는 그러한 취향을 무어라고 불렀던 것 같기도 하지만, 해리는 그런 롤플레잉에서 나오는 성적 쾌락과 자신이 느끼고 있는 정신적 쾌락은 급이 다른 것으로 여겼다. 결과적으로 섹스라는 행위를 위한 놀이와 자신이 누군가를 지배하고 숨통을 조이는 것은 확실히 다른 것이었으니까.
어디의 누구누구가 듣는다면 과감하게 '쓰레기!'하고 지팡이를 휘두를지도 모르는 위험한 생각들이었다. 늦게서야 술병을 내려두고 나니 뒷목이 근질근질 해오기 시작했다. 필히 갈증이었다. 무언가를 마셔야겠다고 갈구하는 것이 아닌 정신적인 갈증이며 배고픔이었다. 이제는 누구를 자신의 앞에 꿇리고, 기게 만들까… 축축하게 젖은 술잔을 들어올리며 해리는 습관처럼 혀를 굴렸다. 쌓인 먹이들 앞에서 입맛을 다시며 무엇을 먼저 먹을까 고민하는 짐승의 고뇌와도 같았다.
아아, 고민하노라면 꼭 한 번씩은 생각나는 얼굴이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는 자신의 먹이 중 하나는 아니었다만,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의 수하에 들어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생긴 것만큼이나 이름도 고귀하신 드레이코 말포이. 몰락한 귀족과도 같은 신세의 드레이코를 생각하노라면 육성으로 웃음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 언제나 빛나던 금발이 무너진 가문과 함께 색을 잃고 부스스하게 흩어지던 것을 생각하며 해리는 눈을 감았다. 딱 한 번, 그의 가문이 패망한 이후 우연찮게 손에 쥐어본 머리카락은 부스스해 빗자루만도 못한 감촉이었다.
좋은 향기를 맡듯이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그의 체향이 어렴풋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웃음을 간신히 숨겨두고선 해리는 잔에 담겨있던 얼음 하나를 으드득, 씹어 먹었다. 말포이의 뼈를 씹어먹을 때도 이런 소리가 나겠지. 딱히 식인을 하려는 마음은 없었다. 그저 그를 떠올리면 자신의 가학성은 극에 달했기에 자연스레 생각난 것 뿐이지.
겁을 먹은 말포이의 얼굴을 생각하니 또 우스워졌다. 아, 그만해야지. 떠날 줄 모르는 웃음을 또 한 번 간신히 숨겨두며 해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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