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허공으로 흩어지는 숨결은 보이지도 않지만 분명히 색을 입힌다면 붉거나 노랗거나 아니면 열에 새까맣게 타버린 검은색일지도 모른다. 혹은 자신의 악의가 얽혀들어서 검은색 일수도 있고. 그리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신호를 기다리는 지금, 너무나도 더웠다. 요근래 비가 내려 날씨가 선선해지고 가을이 찾아오겠구나─싶었건만 날이 급격하게 더워졌다. 바람이 쌀쌀할까 싶어 걸치고 나온 얇은 가디건을 벗고 산뜻한 연하늘색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붙여도 더웠다. 덥다는 생각을 하지않으면 낫지않을까 싶어 깨끗하게 머리를 비우려고 해봐도 어느새 비직비직 '덥다'라는 단어가 기어들어오고 있었다. …이 머리통이 건방지게. 눈을 흘기는 자신이 정말로 우스웠다.

 덥다. 당신은 무얼 하고있을까. 그늘아래서 잠시 숨을 돌리면서 떠올린 것은 당신이었다. 생각의 시작과 중간 그리고 끝에는 항상 당신이 있었다. 나의 마음에 당신이 덩그러니 놓여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날도 덥고, 얼마전 내가 터뜨린 사건에 머리도 아플테고, 밥먹을 시간도 없지? 풀리는건 하나도 없을텐데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있을까. 평소에도 성난 사자처럼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당신인데. ​정말로 우스운 것이, 이 더위에 의미없는 생각을 하는 것도 자신의 머리통을 향해 눈을 흘기는 것도 아닌, 자연스레 당신을 떠올리는 나. 그것이 정말로 우스웠다. 사랑은 이리도 사람을 실없게 만든다. 음, 사랑… 아무래도 낯간지러운 단어에 이헌은 괜스레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날이 너무 더워서 신기루라도 보이는건가?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때문에 피어난 아지랑이가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일까? 그도 아니면 진짜 현실일까. 저 멀리 쭈그리고 앉아있는 인영에 헌은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작렬하는 태양덕에 한시라도 멈추지 않고 걸었건만 결국 자신을 멈추게 만드는 것은 그였다. 세일이라고 투박하게 빨간 종이를 걸어둔 슈퍼 앞에서 혁은 쭈그려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있었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인지 녹이는 것인지 단내가 풍기는 액체가 뚝뚝 그의 손을 타고 바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것 때문일까 아니면 더위 때문일까 평소보다 잔뜩 구겨진 표정으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자신이 더위 속에서 뜨겁게도 그리워하던 당신이.

 뭐라고 말을 걸어야하지. 속이 열에 끓는 물처럼 부글부글거리고 있었다. 반사적인 두근거림을 겨우겨우 가라앉히면서 천천히 그에게로 걸어갔다. 혁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지나가던 사람따위는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이 이제 막 바닥으로 툭 떨어진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내려다보며 씨발, 짧게 욕을 하고있었다. 더위에 젖어 나른하게 가라앉는 목소리에 소름이 다 끼쳤다.

"아이스크림한테도 심술을 부려요? 그래도 체포는 못할텐데."

"…? 뭐야. 너냐."​

 놀람이라고는 전혀 없는 무미건조한 시선. 오히려 더워서 짜증난다는 느낌이 팍팍 묻어있는 눈동자에 이헌은 기운이 쏙 빠지는 느낌이었다. 자신은 저멀리부터 혁을 알아보고 두근거렸는데. 물론 자신이 짝사랑이라는 이름을 걸고있는만큼 서운해할 입장이 아니란 것을 알긴 안다만… 눈치라곤 개미 허리만큼도 없는 그가 여간 얄미울 수가 없었다.​ 쫌. 사람을 만났으면 쪼옴- 반가운 기색이라도 하면 안되냐고. 그가 들으면 미쳤냐고 욕이 돌아올 생각인것도 알긴 안다만.

"땡땡이 치는거예요, 형사님?"

"내가 너냐.​"

"저는 땡땡이 안치는데요? 형사님도 알잖아요, 저 성실하고 꾸준하고 똑똑한거."

"…이 새끼가."​

 더워도 지지않겠다는 듯이 꼬박꼬박 말대꾸를 하는 이헌도 그런 도발에 지겹지도 않은지 미간을 꿈틀거리며 올려다보는 혁도 더위에 찌들대로 찌들어 땀을 삐질거리고 있었다. ​한여름날 햇빛만큼이나 이글이글 뜨겁게 마주하던 시선을 먼저 거둔 것은 혁이었다. 더이상은 상대할 기운이 없다는 듯이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채 더이상의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지긋하게…는 아니지만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성인 남자 둘이서 노려보고 있는 꼴이 우습긴 했지. 이헌은 혁의 옆에 똑같이 쭈그려 앉았다. 그래도 혁쪽에서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이제는 노골적으로 그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절로 더위가 느껴지는 검은 머리카락. 땀에 젖어 가닥가닥 갈라진 머리카락이 뺨이며 귀 위로 부산스레 흩어져있었다. 그것을 넘겨주려 조심스레 손을 뻗자 그제야 반응이 돌아왔다.

"손떼라… 덥다…"

​"그럼 같이 경찰서가요. 시원하잖아요."

"그냥 가라…"

"왜요~"​

 얼굴을 파묻은 탓에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제법 귀엽게 들렸다. 결국 힘없이 퍼덕거리는 손짓에 이헌은 작게 소리내 웃고야 말았다. 평소같은 팽팽함이 감도는 말싸움도 좋지만 이렇게 더위란 놈에 주눅들어 나누는 시무룩한 대화도 좋았다. 어지간히 기운이 없어보이는 당신의 어깨도 젖어서 땀이 흐르는 뺨도.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이 좋았다. 짜증스러운 습도 속에서 시커먼 당신이 반짝반짝, 햇살에 빛나는 모래알처럼 빛나는 것 같았다. 동네의 자그마한 슈퍼 앞에서도 당신은 빛났다. 아. 사랑스러운 사람.

"아이스크림 사줄까요?"

"…어."​

 애도 아니고 아이스크림에 반응해 고개를 드는 당신은 사막의 오아시스, 무더운 여름날의 한줄기 바람. 나의 사랑스러운 그대.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등지고 있던 슈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리베른, 남창AU.  (0) 2015.06.11
민호, Hope. (메런스포有)  (0) 2015.06.11
해말, Hold u.  (0) 2015.06.11
해리포터, Crack.  (1) 2015.06.11
무사히루, BEAST.  (0) 2015.0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