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1. 06:30


짐승은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가소로운 것이 제 수염을 건드려 오더라도 그 고고한 눈길만을 내리깔아 바라볼 뿐 화를 드러내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상대가 자신을 더욱 도발하게 만들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꾀에 넘어 온 상대가 일정한 선을 넘었을 때, 짐승은 돌연 손톱을 세워 달려든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이빨로 살갗을 물어뜯고, 불이라도 쏟아낼 듯한 눈매로 주변을 잠재운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남는 것은 비릿한 악취 뿐 뼈도 살도 내장도 남지 않는다. 그러니 방법은 하나뿐. 얌전한 짐승을 건드리지 말 것. 온순한 짐승을 만만하게 보지 말 것. 아니, 애초에 짐승으로 우려되는 존재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하지만 고양이마냥 털을 누그러뜨리고 미소지으며 초식동물을 연기하는 짐승의 본 모습을 한낱 인간이 알아챌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신차렸을때는 이미 짐승의 가호아래였다. 오로지 저 혼자만이 여유롭게 물어뜯고 뼛속까지 씹어먹을 수 있도록 먹이를 보호하는 아이러니한 가호.

 

"빌어먹을…, 노땅!"

 

 킬킬킬 웃음소리와 함께 퉤, 침을 뱉어내니 피가 섞여나왔다. 그도 그럴것이 볼을 60야드씩이나 날려보내는 발길질로 명치를 걷어차였으니… 소리를 지르는 것도 버거울 정도의 고통에 히루마는 번쩍 들었던 머리를 다시 바닥에 쳐박았다. 전혀 겁먹지않았다고 생각하는데도 내장까지 벌벌 떨려오는 본능적인 위협감에 헛웃음이 다 터져나왔다.

 무사시라는 거대한 짐승은 예와 다름없는 넉살좋은 웃음으로 외출하려는 히루마를 붙들었다. 소름끼치게도 '요이치'라고 이름을 불렀던 것 같다. 그리고 어디나가느냐는 물음에 난 니 아들이 아니라고, 노땅! 하고 킬킬웃는 순간 시야가 한 바퀴 빙글 돌았다. 히루마의 몸이 뒤집혔다기 보다는 앗, 하는 순간에 명치에 가해진 충격에 온 몸의 피가 뱅글 도는 것처럼 시야가 휙 뒤집혔다. 아주 잠깐은 앞이 하얗게 바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기도하다. 어쨌든 그 짧은 순간 벌어진 일 속에서 히루마가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그 발길질로 자신의 갈비뼈가 나갔다는 것이다.

 신장뿐만 아니라 체격, 체력적인 면에서도 무사시와 히루마의 차이는 거대했다. 쓰러진 아버지의 일을 도맡았아야만 했던 무사시의 몸은 톡 건드려보지 않더라도 그 다부짐을 알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자신의 몸이 얼핏 숨겨질 정도의 체격차. 그런 사내, 게다가 데빌배츠 최고의 키커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걷어차였으니 갈비뼈가 나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온 몸이 산산조각 난 듯한 충격에 다치지도 않은 손가락이 파르르, 잘게 떨렸다.

 

"일어나기 힘들어 보이는데."

"말이라고 하냐?"

 

 입꼬리를 틀어올리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천천히 몸에 배어들었다. 라인맨들에게 짓뭉개지기라도 한 것처럼 온 몸이 무거워 히루마는 간신히 주먹을 틀어쥐었다. 주먹을 휘둘러 쳐버리고 싶은 얼굴은 한참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어 그저 힘이 풀리지 않도록 꽈악, 그러쥐고 눈을 치켜뜰 뿐이었다.

 

"잘됐네. 그대로 있으면 되겠군."

 

 손바닥이 저릿할 정도로 갑갑하게 조여오는 짐승의 가호. 결국에는 자신을 밖으로 내보려지 않으려는 행동이었다는 것이 이제는 놀랍지도 않을 정도였다. 무사시 자신을 제외한 사람에게는 시선 하나 조차, 자신이 있는 곳 외에는 발걸음 하나 조차 닿지 못하게 만드는 그 집착. 가히 비틀린 애정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의 그 구속. 오로지 자신만이 살결을 물어뜯고 취하기 위한 짐승의 독점욕. 언제부터였는가 기억나지 않았지만, 시작은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결말은 항상 그랬듯이 그의 팔에 이끌려 방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걷어차인 명치가 무사시의 단단한 어깨에 눌려 고통이 끝날 줄 모르고 치밀었지만 그것을 호소할 정도의 힘은 남아있지 않았다.

 자신이 열고 나왔던 방문이 크게 젖혀졌고, 다시 닫혔다. 동시에 히루마는 눈을 감았다. 짐승의 식사시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