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했고 지나치게 긴 시간이었지만 어쩌면 수많은 시간을 들여 촘촘하게 짜여진 꿈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양은 그렇게 생각했다. 순전히 현실도피일 뿐이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신에게 훨씬 더 위로가 될… 아니,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적은 없는데.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하던 것이 끝내는 산산조각 난 모양이었다. 주저앉고 말았다.
사람이 죽는일은 자신에게 가장 현실적인 일이었다. 태어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모는 지금쯤 가난 혹은 전쟁통에 죽었을테고, 간신히 훔친 자두 몇 알을 훔쳐가려던 뒷골목 제 또래는 자신이 죽였으며, 용병일을 하면서는 이제 이름이나 얼굴조차도 기억나지 않을만큼 수 많은 살인을 저질러왔으니, 태초부터 현재까지 자신의 손에 가장 익숙한 것은 살인이고 죽음이었다. 그것만큼 자신에게 현실 그 자체이자 현실을 일깨워주는 일은 없었다. 바꿔말하면 누군가의 죽음에 흔들린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속이 울렁거리고 눈 앞이 프로펠러처럼 홱홱 도는 것은 아마…. 한번도 인정한적 없고 한번도 깨달은적 없던 것을 이제야 알게 되는 것은 생각보다 잔인하고 생각보다 아픈 일이었다. 그 생소한 감각은 총에 쏘였을때나 느끼는 것인 줄 알았건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고통에 찬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절규하지도 않았으며 절망하지도 않았고 엉망이 되지도 일을 그르지도 않았다. 그저 아직은 저멀리, 거리감있게 자리잡은 현실감을 쥐어채지 못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모른척 눈을 감고 있을 뿐 어느새 제 발 언저리까지 다가와 커다랗게 구멍을 내고 그 아래로 끌어당기는 그것을. 그가 죽었다는 그 현실을, 벌써 깊게 잠식되어 숨통이 조여오는 현재까지 고개를 돌리고 외면할 뿐이었다.
바니의 손안에서 빠져나온 총탄들이 모래사장에 고꾸라졌다. 꼭 그 자식같지 않냐고 누군가가 낄낄댔고 자신도 입꼬리를 올려 웃었던 것 같다. 정확하지는 않았다. 허망한 시선은 그저 저 멀리, 바다 끄트머리 쯔음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음은 이미 이 자리에 있지 않았다. 침묵이 감도는 가운데 바다 바람이 싸늘하게 불었다. 끝까지 자신의 이름을 부르던 그 목소리를 떠올리자 이제야. 볼이 차갑게 식어 퍼석거리는 것이 느껴지자 그제야. 그 위로 한참 시기를 늦은 눈물이 흘러내리자 그래, 이제야 네가 죽었다는걸 실감했다.
거너가 죽은지 꼬박 1년이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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