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손바닥에서 미끌거리며 빠져나간 것은 분명 핏덩이였다. 제 신발위로 쏟아진 붉은 흔적이 현실성이 없는 것은 첫째로 자신은 요근래 이렇게 많은 피를 본적이 없으며, 둘째로 자신의 품에서 핏덩이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져내리는, 그러니까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앗은 사내가 제 연인이라는 것이.
평소에는 토라진 고양이같다가도 슬슬 눈꼬리를 접으며 몸을 기대어 오던 그 사랑스러운 눈매가 고통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천천히 감기는 그 순간을. 속눈썹과 핏자욱이 드리워진 눈동자가 흐려지며 빛을 잃는 그 순간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리 저라도 괴로웠다. 그도 그럴것이, 너를 내가 사랑하잖아.
무감각한 현실감에 쟝은 그저 멍하니 제 손을 그리고 쓰러진 일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살면서, 사람을 죽인 뒤에, 이리도 후회한 적이 있던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이 기억나는 것은 그의 목소리었다. 쟝. 평소와 너무나도 다를 것없어 더더욱 현실감이 없는 그 낮은 목소리. 외마디 비명과도 같던 그 목소리. 울고싶지는 않았다. 눈물이 나지않았다. 왜냐면 나는 누군가의 부고에 슬퍼해본적 없고 아니, 그 전에 네가 정말 죽었을리가 없어서.
쟝은 말없이 일호의 시체를 끌어안았다. 이미 마지막 숨결까지 고스란히 허공으로 흩어진 일호의 움직임은 쟝의 손짓에 의해 늘어지는 것뿐이었다. 그러니까 이것이, 왜이리도 현실감이 없는지… 아직 핏자국이 묻어난 입술께로 제 입술을 가져갔다. 그 어느날 일호가 쥐어준 동화책에서나 나오던 것처럼. 달콤하고 영원한 잠에 빠져버린 공주에게 입맞추는 왕자처럼, 그리 조심스레 입맞추었다. 하지만 그 어느날 자신이 말했던 이야기들처럼 현실은 동화가 아니었다. 너와 내가 걷고있던 길은 동화책에서나 거닐던 왕궁계단도 아니었고 너는 공주가, 나는 왕자가 아니었다. 너는 되살아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이것이, 씨발, 왜이리도 현실감이 없는지…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평소보다 더 차갑게 식어버린 손끝에 소름이 끼치는 순간, 아…
잠에서 깨어났다.
쟝은 아무말도 하지못했다. 뒷목을 찌르르하게 울리는 오한에 잠시간 몸을 떨었을 뿐이었다. 현실감이, 없던 이유가 있네. 기분이 더러운 꿈을 되새길 필요도 없이 다시 자리에 누웠다. 제 품에 얌전히 안겨있는 일호를 괜히 바라보고, 괜히 뺨을 쓸어보고, 괜히 입술을 매만져보고, 괜히, 그냥 괜히. 끔찍했던 꿈의 여운을 그리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임일호, 너를 잃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지독하게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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