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피트, 아니, 안젤로라고 할까. 그의 삶은 적적한 편에 가까웠다. 누군가의 상상보다는 얌전했고, 또 누군가의 상상보다는 소란스러웠지만 평균적으로 보자면 조용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가 즐겨 타는(운전사가 따로 있었으니 그는 말그대로 '타기만' 했다.) 자동차 조차도 고스트라는 이름을 달고 고요하기만 했으니 더더욱. 어느 작은 메이드가 이르기를, 처음 발을 들였을 때 얼마나 고요했냐면, 숨소리 하나 잘못 뱉었다간 어디선가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단다. 그보다 더 큰 메이드들은 주인 어른은 그런 분 아니셔. 재잘거렸지만 그리 무겁고, 조용한 분위기라는 데에는 아무도 부정을 놓아두지 않았다. 그러니 하루에 두어번씩은 아가씨들이 아기새마냥 조잘거리는 소리가 문 너머로 건너들려오고는 해서, 안젤로는 부드럽게 웃으며 오늘도 아가씨들이 활기찬 것 같으니 대청소나 할까. 심술을 부리고는 했다. 

조금 더 비유를 해보자면, 일전에 안젤로의 집에 초대된 남자가 한 명 있었다. 친애를 담아 잭, 이라고 불리던 사내들은 퍽 다정한 탓인지 메이드들 사이에서 꽤 인기가 좋았다. 두 번 많아봐야 세 번쯔음 들렀던 이인데 언제고 작은 아가씨들이 저가 나가겠다고 투닥일 정도로. 아무튼, 초인종을 누른 그이가 자신을 밝히면, 그 목소리가 조용한 집 안에 소문처럼 퍼져나가서, 집 안 곳곳에서 각자의 일에 시간을 할애하던 소녀들이 소란스러워 지고는 했다. 딱 그정도였다. 지내는 이의 수가 적으니 가구도 적고, 그에 비해 과하게 넓은 집은, 공허한만큼 소리가 잘 울렸다. 그러니 더더욱 고요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오래 머물렀던 집이라고는 하나, 안젤로도 가끔씩은 적적함을 느꼈다. 그래서 한 번은 일하는 메이드들과 집사들을 불러 다같이 식사를 했는데, 어색해 하는 것이 제 뺨 언저리까지 느껴져 편하게 먹으라며 먼저 자리를 떠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오늘처럼 넓은 집이 더더욱 넓게 느껴지는 날이 찾아와도 어쩔 수 없었다. 식탁 앞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대신 그는 식사를 무르고, 산책 길에 나섰다. 날이 차니 조심하시라며 목도리를 둘러주는 이에게, 비밀을 약속한 대가로 사탕 하나를 쥐여주고 안젤로는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당을 가로질러, 현관문을 지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폭 터졌다.

차라리 누군가와 같이 나올 것을 그랬나. 밤공기가 매섭게 뺨을 때리자 더욱 외로워지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털어냈다. 분명히 자신이 고용주라고 해서 불편해 하거나, 이 날씨에 산책을 하냐며 잔소리를 할 이들 뿐이었으니 차라리 혼자 걷는 것이 나았다.

손톱 모양으로 휘어진 달 하나에, 별 몇 조각이 제 마음처럼 잔잔히 떠다닌다. 가만 뒷짐을 진채로 걷던 안젤로는 어둑한 하늘을 잠시간 만끽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고, 어둠에 묻혀 고개를 숙인 잡초 따위에 마음을 두기도 했으며, 평소에는 차를 탄 채로 무심히 지나가던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기도 했다. 그러고 있노라면 알 수가 없어진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여유였던 것인지.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 외로움이나 적적함과 형태가 비슷해서 자신이 착각했던 것 뿐인지. 정답이야 어찌됐든 찬 숨과 함께 입김을 뱉어내면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이니 그것으로 좋았다.

방향성도 없고 시간 제한도 없으니 산책 시간이 꽤 길어졌다. 두서없는 발걸음이 뒤늦게 망설여지기 시작한 것은 체온이 낮아진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어디선가 이렇게 몸이 차가워질 동안 걸었냐며 질타에 가까운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시간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면, 저어기까지만. 너무 멀리인가 싶어 목적지를 더 앞으로 끌어올까 싶었으나 원래는 저어어기, 더 머얼리까지 가고 싶은 것을 참은 것이라고 합리화하며 걱정을 털어냈다.

이쪽으로는 가 본 적이 없는데. 골목길 입구에 선 안젤로는 고민하기 시작했다. 앞에는 자신이 걸어왔던 것처럼 쭈욱, 길다란 길이 펼쳐져 있었고, 오른쪽으로 꺾으면 골목길이 시작되었다. 이리 어둡고, 제 마음보다 더 적적하고 어두운 길을, 걸어 본 적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시간인데다 길동무도 없다보니. 저어멀리, 골목길이 끝나는 것으로 보이는 곳에 가로등이 서있기는 했지만, 가로등 불빛이 언뜻, 언뜻 조막만한 빛으로 보일 정도였으니 길이 생각보다 긴 모양이었다. 저 불빛 하나만 믿고 걸어가기엔 너무 긴 것 같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어둡고. 그는 어두운 것이 달갑지 않았으니, 호기심과 두려움 중 어느쪽을 택해야 할까 고민이 재차 길어졌다. 그리고 바람이 목도리 새로 기어 들어와, 뒷목을 서늘하게 때리고 나서야 어이쿠. 작은 소리를 내며 호다닥 발걸음을 물렀지.

저기는, 다음에 가보는 것으로 하자고. 도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안젤로는 발걸음을 물렀다. 돌아서서, 자신이 걸어 온 길을 되돌아갈 적에는 자꾸만 그 골목길의 어둠이 떠올라 몇 번이고 부르르 몸을 떨어야 했다. 추워서 그런 것이겠거니, 더 챙겨입고 나올 것을 그랬다느니. 애써 자신을 달래면 금방 집과 가까워졌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현관 아래로 환한 빛이 쏟아진다. 그 골목길 끝에서 흉흉하게 빛나던 가로등 보다는 더 밝고 따뜻한 빛이다. 그제야 그는 안심했고, 그제야 슬그머니 뒤를 돌아 볼 수 있었다. 이미 지나쳐 온 길이 생각보다 어두웠다. 그러니 다시는, 다시는 이 시간에, 그것도 혼자서, 산책 따위는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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