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만 피고 올게. 바람도 좀 쐬고."
어디 가냐는 물음에 답하는 목소리는, 아직 취기를 채 떨쳐내지 못해 얕게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그만큼 즐거운 분위기를 헤치고 나왔다는 의미기도 하고. 뒷주머니, 앞주머니, 자켓 안주머니까지 뒤지고 나서야 담뱃갑을 찾아 꺼낸 밥은 느긋하게 한 개비를 꺼내어 물었다. 짧은 소음과 함께, 어둠 사이로 새초롬하게 솟는 라이터의 불길이 아까 본 폭죽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재밌었지. 망년회와 신년회를 연달아 하는 것은 저에게 꽤 즐겁기도 하고, 버겁기도 한 일이었다. 바닥이든 쇼파든 여기저기 픽, 픽 쓰러져 곯아 떨어진 이들이 제법 됐을 정도로. 마시고, 떠들고, 어울리고, 한 해와 헤어지고, 또다른 해를 맞이하고. 말 그대로 개처럼 노는 일에는 당연히 체력이 필요한 법이라, 아무리 저라고 해도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니 담배를 핑계로 잠시간 자리를 비웠지. 평소처럼 미련하게 버텼다간 다음날 온전치 못한 모습으로 발견되리라, 얄팍한 이성에게 붙들린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뻐근한 어깨를 풀고, 한적한 길가에 쭈그리고 앉았다. 몸을 숙이니 다리가 풀리는 것 같기도 해서 금방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지만. 차가운 벽에 뒷통수를 내맡긴채로 밥은 생각했다. 즐겁네. 알코올로 달달하게 녹여두어 오늘따라 쓰게 느껴지는 연기를 흩어 내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정말로. 파티장을 떠다니던 노래가 아직까지 귀를 울리는 기분이었다. 시끄럽게 울리는 것이 잔상처럼 귀를 막막하게 만들었고, 서로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목청을 높이다 못해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는데 그마저도 즐거웠다. 행복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천천히 몸을 늘어뜨린 밥은 느리게, 느리게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나 취했나봐. 아무도 묻지 않았음에도 중얼이고선.
이렇게 혼자 있으면 허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 어울리고, 더 정신없는 연말과 새해를 보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복수의 부재. 갈 길 잃은 분노는 더더욱 목적을 잃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딱 하나. 미련스러운 남자가, 세상에 오로지 하나인 줄만 알고 걸었던 길인데.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조직원이 제 아버지라는 것이 확신시 되었던 때부터 밥은 속이 둥그렇게 패인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걸 허망하다고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답답하다고 하나. 그도 아니면, 뭘까.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다. 답을 안다고 해도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 조용히 함구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연말과 비슷하게 겹쳐있어 그 구멍을 채우려 술이며, 담배며, 사람이며. 제 공허함을 달래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꼴아 박았, 아니, 채워 넣었지만. 겨울 바람이 쌀쌀하게 속을 파고들면 모든것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생각하기를, 이대로도 괜찮은걸까. 겉으로 보기에 제 인생은 달라지지 않았다. 아주 모르는 타인이 보기에도 그럴 것이다. 어느 마피아 조직원이 죽었고, 그 뒤를 쫓던 FBI의 입장에선 골칫덩이가 하나 해결되었을 뿐이다. 그보다 더 무심하게 보자면,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아직 살아있다. 하지만 밥에게는 그렇게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으므로. 방향을 잃었단 말이야. 나침반이 고장나다 못해 박살나버렸고, 갈피를 잡아 줄 이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부모를 놓친 아이처럼, 그는, 길 위에 덩그러니, 혼자 남아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막막해질 수밖에 없지. 어떻게 해야할지 목표가 서지 않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을 수밖에 없지. 도태 되어버린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처음 느껴보는 쓸쓸함이었다.
그렇다고 영영 멈추어 서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니까. 그는 털고 일어날 줄을 알았다. 씩씩함은 타고 났으니, 넘어지거나 주저 앉았다고 해서 다리가 잘린 것마냥 머물러 있을 이가 아니었다. 가끔씩은 울고싶을 정도로 절망적이었어도, 곯는 속을 스스로 달래고 문지를 수 있었다. 다른 말로, 잘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버티고, 이겨내는 것에 강한 이였다.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러므로 그는,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누워있으니 마셨던 것을 온통 토해낼 것 같다고 속으로 변명하기는 했으나, 길바닥에서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컸다.
밥은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도 떠들석한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목적지가 있다는 것은 언제든 기분 좋은 일이었다. 멀지 않은 거리, 가벼운 발걸음과 바닥으로 넘어뜨린 짧은 담배 한 개비. 문 바깥으로까지 노랫소리가 새어나오는 탓에, 그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다녀왔어. 제대로 들리지 않을 소리였지만 분명하게 일러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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