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하니 서서 생각했다. 벌써 몇 주가 지났더라. 아니 몇 년인가, 아니 몇 십년? 갑자기 흘러버린 시간들이 가늠이 가지않을 정도로 급격한 혼란이 몰려왔다. 처음 대학생이 되던 날, 환영회라는 명목하에 술을 퍼마시던 때에도 이렇게 어질거리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알딸딸하게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내며 묵직한 머그컵을 기울였다. 하수구로 쏟아지는 원두의 단내가 그나마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켜주는 것 같았다. 두통을 동반한 혼란스러움은 때때로 다미를 괴롭게했다. 다미는 그것을 하나의 병이나 질환으로 여기고싶지 않았다. 그저… 그래, 상실이었다. 자신의 황홀한 젊은날, 소중한 것을 갑작스레 잃어버린 탓이었다. 이제는 퍼펫이 어떤 존재였더라. 자신은 어떻게 싸웠더라. 어떤 아이였더라. 모든 것이 안개에 가려져 불투명할 정도로 수많은 날이 지났다. 어린이 만화를 좋아하며 해맑게 웃는 자신은 없었다. 또한 자신만을 지키겠노라 속삭이던 다정한 이도 없었다.
몽블랑…. 이름에서 달큼하게 굴러가는 발음을 오랜만에 구사하자니 낯설었다. 잊으려고 했다. 잊어야만 했다. 영원한 이별은 아니잖느냐고 웃었으나 영원히 재회는 없을 이였다. 그것을 그 어린 시절의 자신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으나 이해한다고 해서 썩어들어가는 마음까지 달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제는 끝이구나. 하지만 언젠가는 돌아오리라. 의견이 상반되는 머리와 마음과의 싸움은 길었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몇 십년이 지난 현재가지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이렇게 고통받는 것이리라.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끙끙거리며 자신의 발치에서 허우적거리는 자그마한 강아지를 번쩍 안아들며 다미는 웃었다. 즐겁지 않지만 즐거워지기 위해 웃는다. 어릴적부터 고수해오던 몹쓸 습관이었다. 제 볼을 핥아오는 간지러움에 작게 키득거리며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쏟아져 들어오는 상실감, 그로 인한 수많은 고통스러운 감정들. 그것들을 피하기 위해서 다미가 선택하는 방법은 깊은 수면뿐이었다. 상실이여, 부디 더이상 나약한 마음을 잠식시키지 않고 사라지기를. 그렇게 빌며 또 한 번 버텨내야만했다. 이별이란 그리 오래도 다미를 놓아주지 않았다.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순규·한보배, 마지막 날. (0) | 2015.06.11 |
---|---|
하울, 템님 생일 축하해~ (0) | 2015.06.11 |
하울, 도와줘 (0) | 2015.06.11 |
하울, 글쟁이를 위한 첫 문장 파레트 16. 단 한 가지 실수라면, 취한 일이었다. (0) | 2015.06.11 |
홍다미, 글쟁이를 위한 첫 문장 파레트 12. 오랜만에 날이 개었다. (0) | 2015.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