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2015. 6. 11. 06:00


머리끝까지 차고오르는 역겨움에 결국 먹었던 것을 모두 쏟아내고 말았다. 애초에 척안인 자신과 인간이 만든 음식이 맞지않는다는 것 정도는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렇게 모두 게워내리란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음식을 탐하고 억지로 쑤셔넣는 것은 하울 나름대로의 고집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한다. 자신은 제 팔에 얼기설기 얽혀있는 덩굴무늬마냥 무언가에 얽매여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인간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에게 혹은 자신을 바라보는 호의적인 시선들에게, 자신은, 너희와 같은 인간을 먹어치우는 괴물이 아니라, 너희와 같은 인간임을. 괴물이 된 자신을 나름대로 잘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면 그런 것도 아니구나. 입안에 남은 토악질의 역겨움을 퉤, 뱉어내며 하울은 허리를 세웠다.

 자신이 부정한다고 해도 자신이 인간의 살덩이를 씹어삼켜야만 연명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달라지는 것은 아닌지라 우걱우걱 먹어치웠던, 실로 맛있지만 자신에게는 음식물 쓰레기나 다름없었던 안티크의 케이크나 쿠키들이 아닌 고기가 고파왔다. 코를 스쳐지나가는 바람에 인간의 향이 느껴질 정도로 온 신경이 곤두 서 있었다. 하루, 이틀, 하고 반나절…. 손가락으로 세어 본 지난날들이 아득했다. 벌써 이틀 하고도 반나절이라는 긴 시간동안 식사를 거른 것이다. 인간보다 훨씬 월등한 신체조건으로 인간을 사냥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구역싸움이라는 것이 실로 지겨웠다. 지나가는 인간을 덮칠라하면 먼저 선수치고 달려드는 동족 놈들과 싸울 기운도 마음도 없는 하울이었다. 그래도 너무 무리했나… 고개를 젖히자 하늘이 재빠르게 핑그르르 돌았다. 놀이기구를 타고 내려온것처럼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벽을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배고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머릿속을 강하게 파고드는 생각에 벌어진 입술 사이로 침이 뚝, 뚝 떨어졌다.​ 밀려오는 본능을 참을 수가 없게 된 것이 척안이 된 자신이 싫은 이유 중 하나였다. 서서히 오른쪽 눈이 뻐근해져 오는 것을 느끼며 하울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배고파. 감은 눈 앞으로 붉은 것이 어지럽게 섞인다. 배고파. 비명하는 인간의 살덩이와 이빨로 딱딱하게 마주닿는 뼈의 느낌이 입 안에 생생하다. 배고파. 누군가에겐 무기로 불리우는 흉측한 것이 인간의 목을 비틀어 잡을때 꺾이는 뼈의 소리는 무의식중에 흥얼거리는 노래보다도 흥미롭다. 배고파. 눈을 감지 않아도 눈 앞이 시커멀 정도로 고통이 밀려와서 더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배고파. 동족포식이든 인간을 먹어치우든. 자신은. 당장. 배를 채워야했다.

 서서히 가라앉는 밤기운을 감사하게 여기며 하울은 비틀비틀 골목길을 걸었다. 제대로 걷기가 힘들었다. 마치 몸살이라도 든 것처럼 몸은 무겁고 시야는 어지러웠다. 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해, 마치 자신이 인간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게워내고도 아직 남은 것인지 헛구역질이 재차 몰려왔다. 까드득. ​손톱을 세워 짚은 벽을 긁어내며 간신히 저 자신을 억눌렀다. 눈동자가 까뒤집혀 앞이 제대로 분간되지 않는 와중, 익숙한 체취가 느껴졌다. 아직은 멀지만 서서히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그는 자신이 분명히 알고 있는 이였다. 다행이다. 다행인가. 아니 불행인가. 밀려오는 숨을 헉헉거리며 하울은 간신히 발걸음을 옮겼다. 밤하늘에 숨기 좋게 눅눅히 내리앉은 머리칼의 그가 하울을 발견했을 때, 하울은 습관처럼 희미하게 미소지었다. 마약을 한 사람처럼 푸들거리는 손으로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도와줘… …라고 말한 것 같은데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들렸기를 바란다. 하울?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지 못한 채, 하울은 그대로 사이의 품으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도와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