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가지 실수라면, 취한 일이었다. 눈을 떴을때는 각막에 희뿌연 것이 끼어있는 것처럼 시야가 흐려 주변에 있는 것들이 제대로 분간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끈거리며 아파오는 머리덕에 정신이 없건만 눈에 뵈는 것조차도 없어 더더욱 혼란스러웠다. 누군가 머리채를 끌어 당기는 것처럼 고개가 크게 뒤로 휘청거렸다. 중심이 흐트러지자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어 팔다리를 휘둘렀으나 술취한 자의 주정밖에는 더되지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아직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술기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심하다 싶을만큼 양 팔목이 욱씬거렸고 얻어맞은양 복부가 울컥울컥 아려왔다. 만취한 자신은 누군가에게 시비라도 걸었던 것인가. 그래서 얻어맞았고, 결국엔 이렇게 길거리에 던져져 기절했던 상태고? 우스워도 이렇게 우스울 수가 없다. 아직도 촛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하울은 낄낄 소리내어 웃었다. 

 새하얀 제 머리카락 위로 내리앉은 밤기운 만큼이나 차가운 냉기가 주저앉은 엉덩이로 스며들어왔다. 얼마나 앉아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근육이 빳빳하게 느껴질 정도인 것을 보면 꽤나 시간이 지난 것이리라. 내 신세야… 또 한 번 찾아드는 두통에 고개를 세차게 저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바닥을 짚자 무언가가 첨벙거리며 손바닥과 축축하게 마찰했다. 깜짝 놀라 손을 거두어 다른 곳을 짚고 일어났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토사물이나 하수물만은 아니길 빌었다. 아릿하게 비린내가 나는 것을 보아하니 음식물 쓰레기에서 터져나온 구정물인가 싶기도 하고… 아, 그럼 진짜 역겨운데. 간신히 중심을 잡고 서 티셔츠에 젖은 손을 문질러내면서 제 생각에 저가 다 역겨워 왈칵 치미는 구토를 가까스로 삼켜냈다.

 차차 뿌옇던 시야의 안개가 걷히고 사물이 하나, 둘씩 분간이 가기 시작했다. 짙게 깔린 어둠도 서서히 익숙해지기 시작하자 가느다란 실처럼 새어들어오는 빛이 보였다. 아무래도 자신은 어딘가에 들어와있는 것 같은데​ 이르자면 주차장이나 창고. 어쩌다가 여기까지 끌려오게 된 것인지 술에 취한 자신은 정말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하울은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면 우선 땀으로 뒤덮여 끈적한 몸을 씻어내고 이불 속에 파묻혀 반나절을 잘 것이다. 중간중간 깰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피곤함으로는 계속해서 다시 잠들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한 손으로는 눈가를 간질이는 앞머리를 쓸어올리고 한 손으로는 문으로 추정되는─빛이 새어들어오는─ 것을 손으로 짚었다. 바닥에서 길게 빛이 들어오고 있으니 아마 셔터같은 것이겠지. 허리를 숙여 문을 열었다. 그리고 쏟아져 들어오는 빛에 비춘, 셔터를 올리고 있는, 손목에는 덩굴무늬가 어지러이 얽혀든, 제 손을 보았다. 피가 흥건했다.

 뒷통수가 차갑게 시려왔다. 무언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아프기도 했고 무언가가 쎄-하게 척추를 훑고가는 기분이기도 했다. 혈관에 있는 피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 같은 감각은 소름이 돋는 것조차 허하지 않았다. 자신의 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기엔, 제 손에 묻어있는 피를 보자마자 반응하는 자신의 육감이.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어버리고 만 손으로 마저 셔터를 열었다. 가로등 불빛이 눈이 아릴만큼 쏟아져 들어오고, 붉은 자욱이 문질러진 제 티셔츠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까 자리에서 일어날 적에 손에 묻은 것을 닦아낸 부위였다. 닦아낸지 얼마 안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듯 티셔츠 구김을 따라 번진 핏자국이 생생했다. 창고를 나가려던 발걸음이 그대로 멈추어 버렸다. 시간 또한 멈추어버린 것 같다는 착각을 하면서, 하울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 자신이 정신을 차린 그 자리. 이제는 빛이 새어들어와 휑한 창고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그리고 몇 분 전 자신이 누워있던 그 자리에 소나기라도 쏟아졌던 것처럼 웅덩이가 져있는 것을 보았다. 부자연스러운 점이 있다면 빗물이 아니라 핏물이 고여있다는 점이겠지. 하울은 자신이 술을 마실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음식은 물론 음료나 술조차도 입에 대지 못하는, 입에 대더라도 금세 토해내고 마는 괴물인 것을.

 이어서 신발이나 옷가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는 자그마한 조각들과, 강아지 들에게나 물려주던 뼛조각들이 마구잡이로 던진 듯 널부러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명백한 살인의 현장이었다. 다만 시체를 모조리 먹어치워버린, 살인의 현장.

 아아… 그렇다.​ 단 한 가지 실수가 있다면, 배고픔에 취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