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Rainmood>
*
사이 & 하울
for. 제템님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아니. 잘못된 것은 자신이었던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적셔드는 것은 비인지 흙탕물인지 아니면 피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만큼 퉁퉁 부은 눈이나,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폭력이 가장 큰 이유였다. 땅바닥을 한 번 구르고 비척비척 허리를 세우는 하울의 얼굴 위로 주먹질이 쏟아졌다. 이빨이 부러져버린 것인지 아니면 뽑혀버린 것인지 입안 깊숙한 곳이 아려왔다. 너덜너덜 찢어져버린 볼 안이며 잇몸에서 피가 치솟아 주먹을 맞고 고개가 돌아가자마자 왈칵 비린내를 뱉어냈다. 타액과 섞여 묽은 피가 턱을 뚝뚝 타고 흘렀다. 가느다랗게 열린 문 틈새로 엿보는 것처럼 간신히 상대를 올려다 봤을 때, 그는 아직도 어지간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아니면 한심하다는 표정일지도 모른다. 어느쪽이든 지금 자신은 질타 받고 있었다. 무너져가는 몸뚱이만큼이나 산산조각 난 제 마음 때문에.
배에 구멍이 뚫린건가 생각했다. 사람정도는 가볍게 부서뜨리는 커다란 카구네가 몇 번이나 자신의 복부를 가격했다. 한 번은 그것에 잡혀 저멀리 던져지기도 했다. 벽에 허리가 부딪혀 온 몸이 파스스 떨려왔지만 그마저도 일으켜져 또 얻어맞고, 얻어맞고… 몇 대를 맞았는가는 애초부터 헤아리지 않았다. 아득해지는 이성을 간신히 붙들며 몸을 모로 돌리자 사내의 발이 하울의 어깨를 짓밟았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자와 그를 아득히 올려다보는 자신.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되새기라는 듯이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이 흉흉하게 빛났다. 다 뜨지 못하는 눈으로 확인하지 않더라도 소름끼치게 와닿는 시선이었다.
"자기가 약해빠졌다는게 좀 느껴져?"
"……"
"그래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 아니, 애초에 살아남으려는 생각은 있어?"
생각보다 차가웠다. 비단 쏟아지는 비때문만이 아니라. 그. 그러니까 사이의 입술서부터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비난들이 생각보다 아팠고 생각보다 차가웠다. 온 몸이 시리도록 젖어드는 냉랭함에 저는 그저 습관처럼 미소지었다. 글쎄. 자신조차도 정확하게 답을 정하지 못한 문제였으니 답할 수조차 없었다.
"이렇게… 약하게 살다가… 사이한테 잡혀먹으면 되는거잖아…?"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다였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자신의 약함이 시발점이 되어 벌어진 상황임에도. 그리고 그것을 다시 한 번 되새겨주는 상대를 향한 도발. 아니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와버린 약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렇게라도 약아빠진 말을 해도 너는 나를 동정해줄까. 이렇게 네 발앞에서 구차하게 숨을 죽여도 너는 나를 보듬어줄까. 스스로도 역겨울 정도로 나약한 마음이 기어코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이가 분노하는 것은 어쩌면 정해져있는 일이었다.
"…아! 윽, 아악!!"
어깨로 날카로운 통각이 찾아들었다. 이미 온 몸, 어느 한 부위 빼놓지 않고 온 몸이 욱신거려 더이상의 고통은 무감각이나 다름없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어깨를 베어무는 사이의 이빨에 하울은 고통스럽게 숨을 내뱉었다. 짐승에게 잡혀먹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으드득 거리며 자신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생격하게 귀를 울려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철퍽거리며 터져버린 피가 빗물을 타고 흘러 제 등을 뜨겁게 적셨다. 반사적으로 사이를 밀어내려는 손길은 아무래도 힘이 빠져 파들거렸으나 그의 손에 의해 제지당하고 깔아뭉개진 몸 또한 움직일 수 없어 그저 살점을 뜯어먹히고 뼈가 뜯겨나가는 감각을 눈을 감고 어금니를 깨물며 버텨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과 갑작스러운 고통에 밀려오는 쇼크를 가까스로, 억지스레 짚어 넘겼다. 눈이 뒤집어 까질 것처럼 푸르륵 떨리고 할딱대는 것만으로는 숨이 모자라 끅끅 거리며 괴로움을 호소했다. 이미 빗물로 젖은 얼굴에 흥건히 묻은 피를 닦아내며 사이는 여전히 냉랭한 눈빛으로 하울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놈들은 나처럼 무르지 않다는거 알잖아."
"……"
"다음엔 나도 그냥 안넘어가. 정신차려, 하울."
사이는 그렇게 돌아섰다. 사라지는 뒷모습을 쫓지도 못한채 하울은 눈을 감았다. 울음이 터져나올만큼 아팠다. 그 모든것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져 왔으나 그렇다고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고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이었다. 자신의 병신같은 발언으로 화가 났을 사이의 표정이 훤했다. 하지만 정신차리라는 그 한마디가 더 크게 일렁이며 속을 울렸다. 너는 끝까지 그리도 다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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