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와는 별로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조잘조잘 호박씨를 까대는 여느 오빠들과는 달리 제 오빠는 다정했고 이해심이 깊었고 누구보다도 성실했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오빠도 자신도 말 수가 적다는 것이었다. 오빠는 조금 소심한 탓에 속내에 있는 말을 밖으로 꺼내지 않았고 자신은 머리에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 말이 정리되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사실 순규 자신은 대화를 나누는 것만이 형제애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오빠는 어지간히 신경쓰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끔씩은 안절부절 못하고 순규의 옷자락을 가만히 잡아오고는 했으니까. 음, 그렇다면 자신이 조금 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 맞을까? 빵조각을 우물거리며 순규는 상념에 빠졌다.
"아, 순규 일찍 일어났네… 좋은 아침."
"응."
셔츠깃을 정리하며 내려오던 보배는 어지간히 놀란 눈치로 순규에게 인사를 건냈다. 무어라 말을 걸어야할지, 19년동안 마주봐온 동생이건만 아침인사 따위로 고민하는 자신이 한심해 속으로 몇 번이나 자책했다. 귀여운 동생은 그런것에 괴념치 않고 오늘도 여전히 자신만의 생각 속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쉽다고 해야할지… 자신이 조금 더 믿음직스럽고 당찬 오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순규의 맞은 편에 앉았다.
오늘은 꿈자리가 좋지 않았다. 처음부터 전부 기억나는 것은 아니지만 꿈을 자각한 순간 자신은 어딘가에 갇혀있었다. 주변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지만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상황에 두려웠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꿈 속의 자신은 큰 두려움에 빠져 있었다. 혼란스러웠고 무서웠다. 아무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아무도 이해시켜 주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시들어가고 있었다. 남자가 되어서는. 한 줄기 생각이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누군가가 크게 소리질렀고 스피커에선 찢어질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꿈에서 깼다. 오늘 일진이 어지간히 안좋으려는 모양이구나. 또 빵 심부름일까… 그리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이었다. 어색한 아침인사를 건낸 자신과 멍한 자신의 동생. 보아하니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지만은않다…
"오빠."
"어, 어?"
"오빠는 세계종말이 오면 어떻게 할거야?"
정말 대뜸이었다. 빵에 잼을 펴바르는 자신에게로 건내져온 갑작스런 질문. 앞서 한 대화라고는 아침인사밖에는 없었거늘 갑작스레 물어오는 질문에 보배는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한참이나 버벅였다. 순규는 엉뚱한 구석이 있어서 가끔씩 머릿속으로 펼치던 상상의 나래를 툭, 말로 던져낼 때가 있다. 이번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궁금해졌지만 웬일로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이 어지간히 반가워 금방 웃음이 떠올랐다.
"글쎄… 그럴때야말로 오빠 직업이 빛나는 거겠지?"
"응."
"그럼, 나는… 우리 순규를 지켜야지."
가느다란 손가락이 자신의 손을 포근하게 덮어왔다. 키만큼이나 자신보다 배는 큰 손이 마치 이불같았다. 미적지근하게 온기가 느껴져 순규는 마음이 일렁였다. 겹쳐진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슬그머니 올려다본 제 오빠의 얼굴에는 미소가 만연했다. 나름 진지한 질문이라고 생각했건만 간단하게 답을 내어두는 것이 장난으로 느껴지기 보다는 오히려 더더욱 진심이라고 느껴졌다. 아주 오래전부터 답을 결정해둔 질문이었다는 듯이, 망설이지 않고 제 손을 덮어오는 손과 특유의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건내오는 답변.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그 손길과 목소리, 눈빛만으로 벌써 보호받는 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신의 오빠는 듬직했다. 비단 경찰이라는 보배의 직업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순규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보배도 차오르는 뿌듯함에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매는 꽤나 긴 시간동안 손을 마주잡고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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